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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농업의 가치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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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최세균
한국경제 기고 | 2015년 4월 18일
최 세 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국회에 텃밭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 50명 정도로 구성된 ‘국회생생텃밭’ 회원들은 4월 8일에 국회 잔디밭 일부를 텃밭으로 만들고 가꾸기로 했다. 우리 농업의 가치를 공유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국회 텃밭뿐만 아니라 주말 텃밭, 학교 텃밭, 베란다 텃밭 등 도시농업의 현장이 최근 들어 확장되고 있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과도한 경쟁 속에 살아온 도시민의 어깨를 짓눌러 온 피로의 이유와 무게를 생각해 보면, 도시농업 확산 추세가 오히려 조금 더딘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환경오염, 혼잡, 경쟁의 압박 등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농업 활동에 열중하는 도시민은 무엇을 얻는가? 흙을 밟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식물을 매만지고, 그 자라나는 색깔과 모양을 살피고, 수확한 농산물을 조리하여 나누어 먹는 과정에서 얻는 인지적 자극과 교감은 강력한 치유의 효과를 불러온다. 학교 텃밭 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이 ‘재배의 즐거움’과 ‘생명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되었다는 조사 결과도 농업 활동의 치유 효과를 방증한다.

도시농업은 개인적인 체험과 만족의 수준에만 머물지 않는다. ‘도시에서 농부가 되자’는 말이 있다. 도시농업의 교육적‧사회적 지향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다. ‘아는 것보다 만들어 보는 것이, 만드는 것보다 되는 것이 그 대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길’이라고 한다. 잠시 동안이라도 농부가 되어보는 텃밭은 먹거리, 생명, 환경생태, 농업, 농민, 농촌에 대한 이해가 자라나는 교육의 장소이다. 백악관의 안주인 미쉘 오바마가 키친 가든(kitchen garden)을 만들어 ‘도시 텃밭 가꾸기 운동’의 불을 지피고 백악관 인근에 농민장터(farmers’ market)를 개설한 일도 농업이 지닌 교육적 가치를 높이 샀기 때문이리라 짐작해본다.

도시의 텃밭은 또한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공동체의 장소이다. 공동체의 상실로 인한 갈등, 안전, 소외감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는 공동체 복원을 통해 치유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농촌에서는 물론이지만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텃밭 가꾸기는 자연스럽게 이웃과 ‘함께’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도시민이 농부가 되고 농부가 도시민에게 농사일을 가르쳐주는 풍경이 가능하다면, 점점 멀어지는 생산과 소비 그리고 농촌과 도시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좁히고 공동체문화 복원도 기대할 수 있으리라.

도시농업은 또한 도시를 가꾸는 더없이 참신한 실천이다. 공간은 공들여 가꾸는 이에게 특별히 의미 있는 장소가 된다. 손수 집을 청소하고 고쳐 본 사람이 자기 집의 소중함을 더 느끼듯이 말이다. 삭막해 보이는 잿빛 공간에 녹색 생명과 먹거리 생산의 장소를 손수 일구어내는 일은 그 자체로 건강한 도시 공동체를 가꾸는 도시재생 활동이다. 도시농업으로 유명한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벤치마킹할 것은, 국가 채소 생산량의 50%까지도 생산한 적이 있다거나 8,000개가 넘는 공인 텃밭을 만들었다는 실적만이 아니다. 꾸준한 시민 참여와 정부 당국의 정책 의지가 ‘생산적 녹색 경관’을 가꾼 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도시농업이 갖는 다양한 가치와 의의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왔다. 이를 반영하듯 2012년에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2014년에 도시 텃밭 면적은 700ha에 달하고, 도시농업 활동 참여자 수는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도시농업의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며 종합적이고도 치밀한 발전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 이 글은 한국경제 기고(2015.4.18.)를 일부 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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