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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심포지움에서 느낀 로컬 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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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이용선
KREI 논단 |  2015년 4월 2일 
이 용 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3월 16일 타이페이에 소재한 대만 농업위원회(우리나라의 농림축산식품부에 해당)에서 로컬 푸드에 관한 국제심포지움(공식 행사명은 International Symposium on Locally Produced and Locally Consumed Agriculture)이 개최되어 필자도 참석하였다. 이 행사는 대만 농업위원회와 대만농촌경제학회가 공동 주최하였고 대만, 독일, 일본, 한국에서 20여 명이 패널로 참가하였으며, 관련 조직과 업체, 농업위원회 직원 등의 청중도 50여 명이 참석하여 오후까지 활발하게 이어졌다. 

로컬 푸드(local food)란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농식품을 일컫는다. 여기서 지역(local)이란 공간・지리적 근접성뿐 아니라 생산자(산지)와 소비자(소비지) 간 사회적 관계의 친밀성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로컬 푸드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거리(푸드 마일리지)를 최소화하여 지역 내 농식품 수급체계를 확보할 뿐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 간 소통에 의한 사회적 거리를 줄여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있다. 

로컬 푸드는 공급자가 대체로 규모가 작은 소농이고, 상품은 규격화되지 않아 비동질적이며, 소비자까지 2단계 이하의 짧은 유통단계의 특징을 지닌다. 즉 로컬 푸드는 무역자유화에 의한 수입품이나 대량 유통으로 대표되는 규격농산물과 구별되는 시장을 형성한다. 로컬 푸드는 소위 글로벌 푸드와 달리 대량 유통에서는 소외되지만 무시되지 않고 고유의 가치를 인정받고 지역의 경제와 환경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로컬 푸드 시장의 대표적 형태로 제시되는 것은 일본에서 1990년대 말부터 등장한 농산물직매장(일본에서는 ‘파머스마켓’이라 부름)이다. 지역 농가에서 채소, 과일 등 신선한 농산물을 주로 판매하는 매장이다. 일본의 농산물직매장은 2010년에는 16,800개소로 비약적으로 늘어났으며, 이 중 2,300개가 농협이 직영하거나 농협 조직이 운영하는 것으로 그 규모가 크다. 우리나라나 대만에서도 일본과 유사한 형태의 농산물직매장이 최근 수년간 건립,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12년에 완주 용진농협 직매장 등 3개소에 불과하였으나 2014년 말에는 53개소로 늘어났으며, 정부와 농협은 내년까지 직매장수를 120개소로 늘릴 계획이다.      

대만에서는 탠마마(Tan Ma Ma)라는 농민식당이 100개 정도로 운영되고 있으며, 농산물직매장보다 먼저 활성화되었다. 농협이나 생산자조직에 의해 운영되는데, 대만 정부가 농촌여성들을 중심으로 지역의 제철 농산물을 이용해 음식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지원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농민장터와 제철꾸러미라 불리는 배달농산물이 특징적이다. 농민장터는 5일장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직거래시장으로 농가와 소비자가 직접 대면하여 거래되는데, 일본에서는 거의 사라진 시장 유형이다. 1994년부터 개장된 원주의 ‘새벽시장’에는 400호 농가가 참여하고 연간 26만 명이 방문하여 90억 원 규모의 농산물이 거래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철꾸러미는 산지의 생산자(조직)가 재배한 제철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1~2주에 한번 씩 포장하여 우편으로 배달하는 로컬 푸드의 또다른 모습이다. 2009년에 횡성군 여성농민회 5가구가 소비지 21가구에 택배로 보내는 사업으로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15개 생산자공동체의 농가 회원이 도시 소비자 1,000여 명의 회원에게 제철 채소나 반찬을 보낸다.  

소비자들이 로컬 푸드를 선호하는 것은 농산물이 신선하고 안전성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안전성에 대한 신뢰는 생산자와의 소통을 통해 크게 제고할 수 있다는 면에서 로컬 푸드의 장점이 부각될 수 있다. 이러한 로컬 푸드의 장점이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로컬 푸드가 규격화되지 않아 광역 유통을 위한 상품성이나 물류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한계점도 분명히 인식되어야 한다. 로컬 푸드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무리한 확대로 인해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농산물직매장이 일찍 활성화된 일본에서는 농민과 소비자 간 대면이 미흡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최근 대형 유통업체가 로컬 푸드를 판매촉진전략의 하나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신선도나 가격의 유리함만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도시 인구 집중도가 높은 경우에는 제철 꾸러미와 같은 배달상품이 생산자와의 교류를 촉진하는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농민장터와 같이 대면 교류를 원하는 욕구도 비교적 많아 지역 성격이나 소비 계층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로컬 푸드가 개발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의 소비자는 농산물의 신선도와 안전성에 민감하고, 부업적 목적의 소규모 생산자가 농가의 상당 비중을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컬 푸드가 농산물 시장과 지역 사회를 위해 일정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읍·면 지역에 거주하는 농촌 인구수는 880만 명인데 농가 인구수는 290만 명이니, 농촌 지역에 농가가 아닌 인구가 농가 인구보다 두 배나 많이 살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갖가지 농산물이 전체 농산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하더라도 시장을 형성하고 그 가치를 평가받게 되므로 지역 사회를 유지하거나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로컬 푸드 관련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로컬 푸드를 보완적 유통경로나 지역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주요 매개 수단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다만 로컬 푸드의 품질이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 주관적 가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인증’제도를 도입하기보다 그 가치를 교육·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며,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높이거나 유지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관리 방안도 함께 강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농산물직매장의 안전성 관리를 위해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지리적표시, 원산지표시, 전통식품(traditional speciality)을 제외한 과학적인 차이가 인정되지 않는 인증표시 제도는 건전한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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