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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회복력 강화를 위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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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홍상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2015년 3월 24일 
김 홍 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해 국민이 보는 앞에서 중심을 잃고 서서히 침몰해가는 모습을 보여준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회복력(resilience)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 농업이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의 파고 속에 중심을 잃고 침몰하는 배라는 주장과, 우리 농업의 체질 개선, 농업·농촌에서의 사회생태적 회복력 제고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동시에 제기된다. 두 주장 모두 침몰 위기에 놓인 한국 농업을 구하려는 절박한 문제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며, 우리 농업·농촌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다 건강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개 농업의 발전을 통해 선진국이 된 나라는 드물지만, 농업의 건전한 발전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농업 발전의 진정한 모습이 어떤 것인가 또는 우리 농업의 회복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이다.

첨단기술·수출농업만으론 불가

개방화 시대 농업 발전의 방향에 대해서는 인식의 차이가 매우 크다.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 시장 개방 협상에 이은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 등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가 본격화되던 1990년대 이후 최근까지 정부의 농업정책에서는 개방화 시대에 국제경쟁력 제고가 우리 농업 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라는 인식하에 생산비 절감을 위한 기반정비 강화, 경쟁력 있는 전업농가 육성 등이 강조됐다. 분명 개방화 시대 속에서 산업으로서 농업의 발전 및 식량자급 기반 확충 등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 국제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파프리카 생산 농가처럼 첨단시설을 활용해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수출농업을 주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선적 접근은 곤란하다. 우리 농업과 농업경영체를 모두 이렇게 재편할 수는 없다. 다양한 농가 및 농업경영체가 다양한 관점에서 경쟁력을 지니고 농업·농촌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최근 정보통신기술(ICT), 생명과학기술(BT) 등을 활용한 첨단농업 육성, 새로운 유통 체계 구축 등이 강조된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일부 전업화된 첨단농업경영체들이 대량생산과 수출 농업을 주도하기도 하지만,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새로운 유통체계의 구축을 통해 전업화되지 않은 영세 고령농가의 소량 다품목 생산농가도 개방화 시대에 도태되지 않고 새로운 협력적 네트워크 체계 속에서 나름 경쟁력을 갖추고 안정적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다. 예컨대, 인터넷 기술 활용 등으로 새로운 유통체계를 구축한 꾸러미 농산물 유통 사례 등에서 도시의 소비자와 농촌의 소량 다품목을 생산하는 영세 고령 농가들이 연계돼 안정적 생산 소비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인식 전환으로 농업 경쟁력 제고

경쟁력이라는 것도 경쟁 상대 국가, 또는 권역의 시장 상황, 품목 소비 특성 등에 따라 차별화돼야 한다. 아무리 농산물 전면 개방 시대라 해도 경쟁력을 국제 경쟁력이라는 단선적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글로벌(global) 관점, 권역(regional, 한·중·일, 아시아 등) 관점, 국가(national) 관점, 지역(local) 관점 등을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시장 창출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농업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부의 다양한 생산기반정비 투자 확대, 소득 증대를 위한 농업경영체의 생산 증대 노력 등으로 농산물 공급 확대와 가격 하락, 농가 소득 악화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악순환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새로운 시장 개척과 확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 개척 및 확대의 과제도 수출 시장만이 아니라 시장 활용 시스템의 전환도 동시에 고려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업농가 위주의 대량 생산과 도매시장 출하 등의 단선적 구조만이 아니라 로컬푸드 확산, 꾸러미 판매 등 새로운 농산물 생산·유통·소비 구조의 창출과 지역 단위 경영체의 다양한 성장 및 발전 경로를 고려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분명 전면 개방 확대 시대에 즈음해 첨단 기술 농업에 의존한 수출 지향 농업 경영체의 육성을 통한 우리 농업의 경쟁력 제고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첨단 기술 농업, 수출 농업만으로는 우리 농업의 국민경제에서의 다양한 기능 수행은 곤란하다. 새로운 유통체계 속에서는 전업농으로 발전하지 못한 영세 고령농가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경영체로 자리 잡고 농업·농촌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우리 사회의 농업 생산 능력, 농산물 자급 능력을 제고시킬 뿐만 아니라 전체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과 변화 속에서 우리 농업의 회복력은 강화될 수 있다.

지역·수요자 중심 정책적 접근을

이와 관련 정부 정책 추진 체계도 과거 정부 및 공급자 중심 사고를 벗어나 지역 및 수요자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지역 단위에서 경영체의 다양한 성장 경로를 고려한 맞춤형 정책과, 합리적 자원 배분과 효율적 관리가 중요하다. 그리고 최근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사회적 경제 부분도 적절히 활용하는 새로운 농정 추진 체계의 구축도 요구된다. 단선적 국제경쟁력 제고 차원의 정책 및 시장 구조로부터 벗어나 지역 사회의 회복력 강화에 노력하고, 이를 통해 농업·농촌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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