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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조급한 성과 실현 욕구를 줄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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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홍상

 

한국농어민신문 오피니언 |  2014년 6월 23일 
김 홍 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 부처마다 2015년도 예산 작업이 한창이다. 농업·농촌 관련 예산 증액에 대한 요구도 강하다. 게다가 우리 농업에 큰 영향을 미칠 한·중 FTA 추진에 따른 대응 방안 모색 차원에서 새로운 사업 개발과 예산 증액 필요성이 제기된다.

정부의 예산 증액이 농업인의 소득 증대와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정부 주도 획일적 정책 추진, 조급한 성과 실현 방식의 정책 추진 등으로 오히려 농가 소득을 더 불안하게 하고 지역 단위 자생적 노력을 약화시키는 문제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정부의 보조금 지원 방식으로 우수 선진 사례를 조급하게 확산 보급하는 정책 사업이 그러한 문제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선진사례 보급·확산 신중히

지역별 차별화가 가능한 분야의 경우 적극적 보급 확산 정책이 좋은 성과를 보여줄 수 있지만, 지역별 차별화나 경영체별 차별화가 곤란한 부분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보급 확산 정책, 특히 보급 확산을 위한 보조금적 성격의 지원 확대는 결국 선진 지역이나 선진 경영체의 성과를 잠식해 지역차원의 다양한 자생적 노력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예컨대 특정지역에 특화된 지역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지역 주민의 소득 수준과 삶의 질을 제고시키는 선진 사례의 경우, 이러한 지역 공동체 중심의 조직화 및 사업화 경험을 다른 지역이나 경영체에게 확산·보급해도 선진지역에 불이익을 주지 않고 전체 농촌사회의 발전과 농업인의 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지역에서 고소득작물 재배로 소득 증대 현상이 나타났다 해도 해당 품목이 지역별로 특화 내지 차별화되기 곤란한 경우 이런 사례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정책지원사업을 추진하게 되면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기존 선진 지역 농가도 손해보고 많은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농가 소득 증대가 힘들게 될 것이다.

지역별 차별화 전략 전제돼야

이러한 정부의 조급한 성과 실현 욕구에 기반한 정책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추진할 정책사업에서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확산·보급 지원사업의 경우 지역별 차별화, 새로운 시장의 창출 등을 전제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선, 한·중 FTA 추진 대응 관련 밭 농업 경쟁력 제고 차원의 기반정비, 기계화, 주산단지 조성 등 매우 시급한 정책과제가 많다. 그런데 이들 정책 대부분은 농산물 생산 증대로 이어져 농산물의 가격 하락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막대한 재정 투입으로 농가의 농작업 여건이 개선되겠지만 농가소득 감소로 귀결될 우려가 있다. 경쟁력 제고 차원의 대책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 창출, 농가의 경영 능력 제고 등 다양한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둘째, 밭작물은 품목이나 지역에 따라 도입 기술의 수준과 범위가 상이한데, 정부 정책이 생산 과정을 전국단위로 표준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면 자생적으로 형성된 지역 간 생산성 격차 및 선도 농가의 수익발생구조가 정부 정책에 의해 사라져 자생적 노력이 약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반복되는 밭작물 가격 등락에 대응해 주산지 조성과 연계해 지역에 따라 정책 지원 품목을 차별화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조급한 마음으로 정책적 판단에 의해 특정 지역의 품목을 차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지역 스스로 조직화해 지역별 차별화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셋째, 최근 농업부문 창조 경제 실현, ICT 융합을 통한 창조농업의 실현 등의 차원에서 농업 부문 ICT 융합 모델화 사업과 확산 사업이 적극 추진되고 있는데, 이러한 경우도 확산 사업으로 새롭게 증산되는 농산물 등이 새로운 시장 수요 창출과 연계돼 기존 선도 농가에 대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많은 투자비용을 지불해 겨우 안정화된 일부 고소득 선도 농가의 모델을 정부의 정책 지원을 통해 다수의 농가가 따라하면 제품 및 시장의 차별화 전략 없이는 모두가 손해 볼 수 있다. 조기성과 실현이 쉬운 기존 선진 농가 따라하기 방식의 보급 확산 정책을 지양하고, 기존 경영체와 차별화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할 것이다.

정책 개입 부작용 발생 없게

개별 경영체나 지역단위에서 스스로의 비용 부담으로 장기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이뤄낸 성과를 정부 정책 개입으로 소멸시키는 잘못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역 단위 농업인의 자율적인 노력을 통해 우리 농업·농촌의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농업인이 스스로 책임지는 조직화에 기반 하에 정책지원사업이 지역별로 차별화돼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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