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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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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심재헌
KREI 논단 |  2014년 2월 5일 
심 재 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최근 사회 트렌드는 1990년대식 복고(復古) 바람이다. 얼마 전 종영한 케이블 방송 드라마의 유명세로 인해 90년대가 복고의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는 지방에서 올라온 94년 대학 신입생들의 좌충우돌 상경기를 그 시대의 사회·경제적 사건들과 접목해 풀어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서태지 신드롬, 농구, 성수대교 붕괴, 김일성 사망, 힙합, 월드컵 첫 선제골, IMF 등 우리 사회를 변화시킨 굵직한 키워드와 사건들이 많이 있었으며, 드라마에서도 주요 사건의 배경이 되었다. 이 시기 농촌에도 큰 변화의 물결이 있었지만, 드라마의 대부분 이야기는 배경이 되는 서울 중심의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 시절 지방의 사건이나 이슈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필자가 생각하지 못하는 더 중요한 사건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그 시기 농촌의 몇 가지 주요한 사건들을 기억나는 대로 되짚어보고자 한다. 

1994년 농업·농촌의 주요 사건 중에 하나는, 그 시점 이전부터 논의되어 왔긴 하지만 그 해 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논의된 ‘UR 협상 종료' 라고 할 수 있다. 그해 여름은 기록적인 불볕더위와 가뭄으로 무척이나 덥고 고생스러워 가을 작황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시점에 겨울 국회에서는 UR 이후  WTO 체제 가입 비준동의안이 채택되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농촌에는 세계화의 광풍이 직접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3차 농어촌구조개선대책, 농어촌발전위원회 설치, 농어촌특별세의 신설,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농업생산기반 정비사업의 제정 등 다양한 대책이 마련되고 수립되었지만 아직도 농촌에는 다양한 문제가 산재되어 있다. 1994년 이후 도시 주민들과 비교해 농촌 주민들의 상대적인 소득 격차는 꾸준히 커져만 갔다. 1994년 농촌 주민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도시민과 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가장 적었던 시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조사된 농가 소득은 도시 근로자 연평균 소득을 근소하게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4년 100.4%를 기록한 도시 근로자 대비 농가의 연평균 소득 비율은 1998년 외환위기에 79.9%로 하락했고,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65.2%, 2012년에는 최대 격차를 보이며 57.6%로 눈에 띄는 하락 폭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도농 소득 격차가 농촌인구의 고령화와 낮은 농산물 가격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우리 농촌의 문제점은 최근까지도 해결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라고 말한다.

1994년 농업·농촌을 둘러싼 굵직한 또 다른 화두는 경관과 토지이용에 관련한 것이다.  “떠나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농업진흥진역 농지의 일부를 변경하여 준농림지역으로 설정한 국토이용관리법이 그 해 제정된 것이다. 그러나 1994년 경제활성화를 위해 준농림지역의 규제를 완화한 이 법안으로 인해 농촌지역에서는 난개발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후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준농림지역을 폐지하고 관리지역 제도를 도입했지만, 최근 경제활성화라는 명목으로 다시 관리지역 제도가 수정되었다. 아직 그 성과에 대해 논하기는 힘들겠지만, 분명한 것은 20여 년 전 우리의 과오를 또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농촌 경관과 공간 구조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1994년 무렵 우리 농촌에 큰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사건은 도농통합의 바람이다. 1994년 3월~5월 당시 내무부 주도로 동일 생활권의 시·군을 도농복합시로 통합하는 행정구역 개편 시행의 준비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도농통합 이야기는 앞서 언급된 드라마에서도 삼천포시와 사천군의 통합 과정에서 나타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로 그려지고 있다. 결국 이듬해인 1995년 1월 1일 32개 도농복합시가 탄생했고, 그 이후 2013년 9월 23일 여주시의 출범까지 총 55개의 도농복합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도농통합을 통해 도농 간 상호보완을 추구했던 초기 목적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큰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는 평가이다. 최근의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농복합시에서는 지역 내 도시지역으로의 쏠림현상이 심화되었다고 한다. 즉 인구의 쏠림, 자본의 쏠림, 행정의 쏠림이 도시지역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도농복합시 창설의 취지와는 달리 도시지역과 농촌지역 간의 격차는 완화되지 못하고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1994년을 무대로 삼았던 드라마가 주목받았던 점은 농촌적 삶을 살던 젊은이들이 도시적 삶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그 시절도 그랬겠지만, ‘서울 사람’ 아니면 모두 통틀어 ‘촌사람’으로 분류하는 ‘서울 사람’ 인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현재도 농촌에서는 당연한 일들이 서울에서는 웃긴 이야기가 되는 것은 바로 촌사람들이 ‘본인이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비해 소수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서울에서 타 지역으로 전출을 제외하고 1994년에 수도권 외 지역에서 서울로 전입해 오는 사람은 약 27만 명 수준이었고 현재에도 20만여 명 가량이 비수도권에서 서울로 전입해 오고 있다. 즉, 1994년에는 서울 인구 천 명 중에 지방에서 갓 상경한 사람이 25명 정도 있었고, 현재는 서울 인구 천 명 중 20명이 서울에서 1년 미만을 거주한 농촌 출신의 사람들이라는 소리다. 수치로 알 수 있듯 다수의 서울 사람들에게 소수의 농촌 출신 사람들의 좌충우돌 이야기는 흔치 않은 이야기 소재거리임에 분명하다. 즉, 소수의 사람들의 다른 문화 양식으로 인해 서울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현 시점에서도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고 재밌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성이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어색함은 이상함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신기하고 재미있는 상경기를 넘어 우리는 도시와 공존하는 그때 농촌도 살펴보고 우리 농촌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더욱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2034년에 아름답고 즐거운 모습으로 응답할 수 있을 2014년의 농업·농촌의 밑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어떨까 제안한다. 또한 최근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동하는 향촌인구가 증가하는 동력을 활용하여 2034년에 2014년에게 웃으며 응답할 수 있는 농촌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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