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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나·너·우리’ 텃밭부터 잘 가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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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최경환
농민신문 시론| 2013년 7월 19일 
최 경 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960~70년대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의 첫 문장이 ‘나, 너, 우리’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낫 놓고 기역(ㄱ)자’도 모르는 갓 입학한 철부지들은 선생님을 따라 큰소리로 읽고 또 읽었다. 그때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흔하지 않아 철부지들이 초등학교에서 글자를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1학년 국어책 처음을 이렇게 시작했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필자의 의도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까막눈’인 철부지들이 쉽게 이해하면서 글을 익히도록 했던 것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이이 발효되면서 요즈음 협동조합이 대세다. 5인 이상 모이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6월 말 현재 1461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경제모델로 부각되면서 조금 어렵다 싶은 사회·경제 문제들은 협동조합을 통하면 다 해결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도시와 농촌에서 일고 있다.


 그러나 사람만 모였다고 협동조합이 저절로 굴러갈까. 그동안 농촌지역에서 설립된 많은 영농조합법인 중 제대로 운영되는 곳이 많지 않은 데서 그 결과를 예견할 수 있다. 사람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빠졌기 때문이다. 바로 협동하는 마음이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는 ‘콩 한쪽도 나눠 먹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들이 실감 났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 역시 철부지들 기억 속에 두고두고 남아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나’만을 중심으로 한 가정환경과 학교교육이 팽배해 있고, 사회도 ‘나’만이 중요한 분위기이다. ‘나’만 있고 ‘너’는 없는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았는데, ‘너’에 대한 생각이나 배려가 있을 리가 없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종종 불만스러워 혼자 짜증을 부리는데, 하물며 ‘나’가 아닌 ‘너’와 함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말로 해결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요즈음 협동조합·사회적 기업·공동체 등의 다양한 성공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이들 성공한 사례를 보면 모든 문제가 금방이라도 해결될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의 겉모습만 보아서는 곤란하며,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들 협동조합은 어느날 갑자기 성공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갈등을 헤치면서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성공적이라고 평가되는 협동조합들도 앞날이 보장된 것은 아니며, 각자 당면한 문제와 계속 씨름해야 지속가능할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협동조합들은 성공한 협동조합들의 화려한 현재의 겉모습만 모방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이들이 어떻게 협동조합의 밭을 일궈 씨를 뿌리고 비바람을 견디며 열매를 맺게 되었는지를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협동조합을 시작하려 한다면 대내외 여건과 인적·물적 자원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자신의 수준과 단계에 맞는 조치부터 취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지원도 획일적이 아닌 협동조합의 수준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


 상당수의 농업·농촌 문제는 협동조합을 통해 해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당면한 농업·농촌 문제들은 공동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장개방 대응 및 경쟁력 제고, 귀농·귀촌과 공동체 복원, 그리고 행복한 농촌 만들기 등을 위해서는 ‘나, 너, 우리’라는 마음의 텃밭부터 잘 가꾸어가야 한다. 농촌지역에서 사라져가는 ‘농심(農心)’을 되살리는 것도 협동조합의 기반을 다지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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