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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지원조직, 지시/동원 조직이 되지 않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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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KREI 논단 |  2013년 5월 29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농림축산식품부의 ‘창조경제’ 전략의 핵심 슬로건인 ‘6차 산업 활성화’를 위해 검토하고 준비해야 할 정책 과제 목록 가운데 ‘중간지원조직’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중간지원조직’이 유행할 모양이다. 마을 기업에도, 농어촌공동체회사에도, 사회적 기업에도, 협동조합에도, 색깔 있는 마을 만들기 운동에도, 드디어 이제는 6차 산업에도. ‘중간지원조직’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중간지원조직’의 출처는 일본이다. 하지만 일본의 그것과 우리나라의 중앙정부 부처들이 만들려 하는 ‘중간지원조직’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 ‘NPO법’, ‘마찌쯔꾸리(마을만들기)’,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의 흐름이 맞물리는 가운데 등장한 ‘중간지원조직’은 무엇의 ‘중간’에 있었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은 지역 안의 다양한 단체 및 조직들이 참여하는 연결망(network)의 ‘중간’에 위치하여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수평적 연결망의 사이, 어느 틈’에 위치하는 조직인 것이다. 이는 일본의 ‘중간지원조직’이 위계적으로 구조화되지 않은 연결망 속에서 협력과 교류의 형태로 움직일 것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꼭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우리나라에서 중앙정부 부처들이 각기 정책 사업들마다 곁붙여 만들었거나 만들고 있는 ‘중간지원조직’은 ‘수평적 연결망’이 아닌 중앙-지방으로 이어지는 보조금의 계선(係線), 즉 수직적 흐름의 중간에 위치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흐름은 돈의 흐름과 함께 돈의 발신처가 권력을 갖는 위계적 구조의 수직적 연결망이다. 보조금의 계선을 타고 하향적으로 만들어진 ‘중간지원조직’은 자칫하면 ‘중간지시/동원조직’으로 변신할 소지가 다분하다. ‘중간지원조직’의 ‘중간’은 수평적 연결망을 전제해야 성립되는 말이다. 중간지원조직은 특정한 농촌 지역 안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이 대등하게 참여하는 동반자 관계의 망(網) 속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중간지원조직’이 ‘중간지시/동원조직’으로 왜곡될 가능성 외에도, ‘중간지원조직’들이 분야별로 너무 많이 생겨나서 ‘온갖지원조직’들이 나타날 기미(機微)가 보인다는 점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시/동원조직’들을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일이다. “역설(力說)하면 역설(逆說)을 초래한다”던 누군가의 말처럼, 중간지원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만들려 애쓸수록 그 결과는 의도와 어긋나는 ‘제도화(制度化)의 제도화(制度禍)’가 우려된다.

 

 중간지원조직이라는 그럴듯한 풍경에서 은폐된 것이 있다. 그것은 중간지원조직이 활동가 개인의 신념과 사상에 기초한 희생을 담보로 하지 않고서는 작동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현재 전국 각지에서 활동 중인 많은 중간지원조직들의 활동가 가운데 5년 이상 자리를 옮기지 않고 꾸준히 일하고 있는 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몇 명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정한 정부 정책 사업과 관련하여, 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어떤 기관이 중간지원조직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위탁받더라도 대개 1년짜리 ‘계약’에 불과한 것이어서 신분의 불안정성이 크기 때문이다. 연말에서 새해로 접어드는 시기에 ‘위탁 계약’은 끝이 나고 새해에 그 활동을 다시 위탁받지(중간지원조직으로 지정되지) 못하면,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활동가들의 단기 이직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활동가들이 받는 급여의 수준도 비현실적으로 낮은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비슷한 연령대 공무원들이 받는 급여의 1/2~1/3 수준에 불과하고 최저임금 수준을 겨우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왜 그렇게 활동가 인건비 수준이 낮은가? 활동가들의 전문성과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풍토와 더불어, 공공 부문이 지출하는 경비 가운데 인건비성 경상비가 원천적으로 낮은 수준에 묶여 있다는 제도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활동가는 날 때부터 활동가가 아니며, 한 목숨 바쳐 세상을 바꾸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으로만 뭉쳐진 혁명가도 아니다. 결국 그도 생활인이다. 자녀가 성장해서 점점 더 상급의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 학비 걱정을 해야 하는 생활인이다. 그 활동가가 어느 농촌에서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할 때, 그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해줄 수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 여건 속에서 경륜(經綸)있는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고, 한 지역에 뿌리박고 진정한 연대와 협력으로 운용되는 수평적 동반자 관계망의 윤활유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지금처럼 중앙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중간지원조직의 일꾼을 행정사무 수행의 ‘수족(手足)’ 쯤으로 여기는 세태(世態)를 바꾸어야 한다.

 

 상상을 해본다. 농촌 지역마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의 사업체(enterprise)-결사체(association)들이 풍성한 의욕과 활동을 매개로 얽혀 있는 연합체(협동체) 조직이 만들어지고, 그 연합체에 속한 어느 작은 단위에서 겸허하고 성실한 활동가들이 지역 주민의 일원으로서 여러 조직들에 그리고 지역사회에 기쁘게 봉사하게 되는 날을 그려본다. 물론, 그들의 전문성 있는 조력(助力) 활동의 대가는 연합체 조직에 속한 개별 사업체 혹은 결사체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추렴한 것에서 나오는 것이며, 혹시 힘에 부치면 지방자치단체가 약간을 도와주는 형식의 그런 중간지원조직이 튼실하게 자리 잡는 그날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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