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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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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유통단계 축소를 위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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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최병옥
KREI 논단| 2013년 3월 20일
최 병 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농산물 유통단계 축소가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언론은 역대 정부에서 농산물 유통단계 축소를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면서 현 정부에서 주장하는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농산물 유통단계 축소가 사회적 화두로 등장하게 된 것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서민생활과 밀접한 농산물과 식료품 가격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농산물은 유통단계가 길어질수록 유통과정에 참여하는 경제주체가 많고 이들의 경제적 이익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유통마진이 높아진다. 그러나 농산물 유통단계가 산지, 도매시장, 소비지 3단계로 단순화 될 경우 농산물 가격안정 뿐만 아니라 생산자 소득증대, 소비자 구매비용 절감이 가능하기 때문에 서민경제를 중시하는 현 정부에 상당히 매력적인 정책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유통단계를 절감한다면 유통마진이 감소하여 안정적 가격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까? 농산물 유통 전문가 또는 업계의 경제주체에게 이러한 질문은 상당히 곤혹스러우며 다차원적인 대답이 필요하다. 우선 1차원적인 대답은 “그렇다” 이다. 실제로 생산자 단체 및 소비자 단체 간 직거래를 실시할 경우 시장가격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계약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중간 유통단계가 없기 때문에 유통마진이 낮아진다. 그렇다면 2차원적 대답은 무엇일까? 대답은 “직거래가 대안이 될 수 없다”이다. 전국의 모든 골목마다 직거래 매장이 들어서고 지역별·거점별로 직거래 물류센터가 중계기능을 실현하기 전까지는 대량유통 및 분산체계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대기업을 제외하고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생산자 단체 및 소비자 단체가 없다. 현재 농산물 유통경로 중 약 50%를 도매시장이 담당하고 대형유통업체 및 가공업체 30%∼40%, 직거래 5% 미만 등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어 직거래 확산은 한계가 있으며 직거래를 확산시켜 유통구조 개선을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면 유통단계 축소를 위한 대안은 없는 것일까?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필자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농산물 유통단계 축소는 단기간에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목표가 단기적·중장기적으로 구분되어야 하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전략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직거래와 같은 농산물 유통경로를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자 및 소비자 단체가 주도하는 다양한 직거래 사례를 발굴, 육성할 수 있도록 법률적 정비가 필요하다. 현재 농산물 직거래는 생협, 한살림, 아이쿱 등이 주도하고 있지만, 일부 지자체와 농협에서 직거래 장터, 직판장 등을 운영하여 유통비용을 절감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 그러므로 직거래의 다양한 사례를 조사·분석하고 관련 현황 및 문제점이 파악된 후 법률적, 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하여 현재 약 5%이내에 불과한 직거래 비율을 단계적으로 제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형유통업체의 월례 휴무일에 지자체나 농협 등에서 직거래 장터를 개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다.  

  

  한편으로 대형유통업체의 급속한 성장이 공정하고 올바른 거래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대형유통업체의 유통단계는 산지, 물류센터, 판매장을 경유하는 3단계 유통체계로 이루어지지만, 대형유통업체가 취득하는 이익이 적정수준이고 산지유통조직이 납품과정에서 받는 불이익이 없는가를 관리·감독하여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농협, 영농조합법인 등의 생산자 단체가 운영하는 산지유통조직 육성과 도매시장 경쟁력 강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두 가지 방안은 정책의 변화와 관계없이 항상 추진되어야 할 과제이다.

  

  농산물 생산자가 농협, 영농조합법인 등의 생산자 단체를 중심으로 조직화되지 않을 경우 산지유통 단계가 길어져 유통마진이 증가하게 된다. 예를 들어 배추는 생산자가 시장 가격변동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하여 산지유통인과 밭떼기 거래를 하지만, 산지유통인도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하여 자신보다 거래규모가 큰 다른 산지유통인과 거래한다. 이러한 경우 산지에서 발생하는 유통단계는 2∼3단계이고 산지에서 발생하는 유통마진은 소비지 유통단계에 전가된다. 그러므로 농협, 영농조합법인 등의 산지유통조직은 산지유통시설(APC)을 중심으로 생산자 조직화 기반을 구축하여 산지유통 단계 축소와 출하단위 규모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가락동 도매시장을 포함한 전국의 32개 공영 도매시장은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 산지에서 출하된 농산물은 도매시장 내에서 상·하차, 경매, 중도매인 점포 운반, 소비지 배송 등의 다양한 유통단계와 물류행위를 거치게 된다. 도매시장 내에서 유통단계와 물류행위가 많을수록 도매시장의 거래비용이 증가하므로 산지에서 포장화나  출하단위 규모화가 이루어져도 도매시장의 유통마진은 감소되지 않는다. 또한 도매시장 가격결정 방식도 실수요자 요구에 따라 다양화되어야 한다. 도매시장 가격결정 방식이 수급을 반영한 경매제도 위주로 형성된다면 안정적 가격형성을 바라는 생산자 및 소비지 요구를 반영할 수 없으며 공급량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성도 심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농산물 유통경로와 유통단계는 제도적 또는 자생적으로 성장, 발전하여 왔기 때문에 많은 경제주체가 수집 및 분산, 가격 결정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부가 농산물 유통단계 축소를 통하여 물가안정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성과를 중시하는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단기적, 중장기적 정책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수단이 실행되어야 한다. 농산물 유통은 상품의 부패성 및 선도유지의 어려움 때문에 저장 및 유통과정에 콜드체인 시스템이 필요하고 영세규모의 유통업자부터 대기업까지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기 때문에 단편적이고 단기적 정책대안으로는 유통단계를 축소하기 어렵다.  

  

  역대 정부는 정권 초기에 의욕적으로 농산물 유통 구조개선을 외쳤지만 단기적, 중장기적 정책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단기적 성과 도출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정책의 괴리가 발생하여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하였다.  

 

  현 정부는 집권 초반기에 의욕적으로 농산물 직거래 확산 및 유통단계 절감을 제시하고 대통령이 서민경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주장하는 만큼 꾸준한 인내와 노력을 가지고 농산물 유통단계 축소를 위한 단기적, 중장기적 정책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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