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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사라지는 농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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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성주인
   KREI 논단| 2012년  8월  29일

성 주 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농어촌에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젊은 층이 떠나고 고령인구가 늘어 급기야 빈집만 남은 유령 마을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꼭 그런 물리적 의미에서 마을이 사라진다고 한 것은 아니다. 마을 공동체를 이끌어온 전통적 원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마을 소멸 문제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우리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살기만 하는 곳을 ‘마을’이라 부르지 않는다. 보통 우리가 ‘마을’이라 할 때는, 개개인의 행동이 일으키는 영향(학술 용어로 ‘외부효과’라 지칭)이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현되도록 구성원들이 서로 합심하는 곳을 염두에 둔다. 마을은 주민들이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꼭 두레, 계 등과 같이 농경 문화에서 유래하는 전통적 활동으로만 마을 공동체가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마당에 꽃나무를 심어 오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는 것, 집 주변 쓰레기 방치로 미관을 해치고 악취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 등이 모두 마을을 마을답게 하는 일상적인 일들이다.

  

  이런 이유로 아파트가 마을이 되기는 쉽지 않다. 아파트는 본질적으로 이웃 간에 외부효과를 주고 받을 가능성 자체를 최소화하는 데 적격인 주거 공간이기 때문이다.

  

  농어촌 마을이 사라진다고 말한 일차적 이유는, 그런 아파트가 어느덧 농어촌 지역에서도 지배적인 주거 양식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2010년 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읍 인구의 52%, 면 인구의 17%는 아파트에 산다. 최근 건설한 주택만 놓고 보면 상황은 더 분명하다. 읍에서는 2005년 이후 지은 집의 78%, 면에서는 34%가 아파트이다. 이웃간 상호작용의 여지가 현격히 줄어드는 아파트 단지에서 ‘마을’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힘든 것은 농어촌도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 증가 때문에만 농어촌의 마을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확산이 주로 읍·면 소재지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라면, 그에 해당하지 않는 일반 마을들은 다른 이유로 존립 근거가 흔들린다. 무엇보다 과소화 마을이 늘고 있다. 과소화 마을은 가구 수가 공동체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 아래로 떨어진 곳을 칭한다. 편의상 행정리당 20호 미만을 과소화 마을의 판정 기준으로 할 때, 전국 행정리 중 8.5%는 과소화 마을로 분류된다. 그리고 그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마을 과소화가 심화된다고 해서 곧 해당 마을이 지도에서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 곳곳에 빈집이 늘어나겠지만 마을 자체의 외관은 유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구 유출·고령화로 인해 마을이라는 모듬살이의 그릇에 담을 내용물은 많이 남지 않은 상태다. 이웃간에 일상생활을 공유하면서 오갔던 다양한 상호작용의 기회가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웃에 방치된 빈집 때문에 외관상, 정서상 그리고 환경상 주민들이 고충을 겪더라도 그에 대해 탓해볼 상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농어촌 마을이다. 도시의 아파트 단지 전철을 밟아 농어촌 마을도 몇몇 주택들이 한 곳에 모여 있기만 한 물리적 집합체 성격으로 변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을 과소화 문제의 완화를 위해 요즘 부쩍 관심이 높은 귀농·귀촌 조류에 기대를 걸어볼 법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어긋난다. 농어촌 이주 희망자들은 마을을 이루고 공동체 일원으로 어울려 사는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지만, 이와 달리 자연 가까운 곳에서 주변의 구속 없이 사는 삶을 동경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나타난 귀농·귀촌 동향을 보면 후자를 선호하는 집단이 수적(數的)으로 더 우세한 듯싶다. 마을과 떨어진 호젓한 곳에 터를 잡은 귀농·귀촌인들의 주택이 전국적으로 늘어나는 데서 알 수 있다. 대대로 마을에 살아온 주민들 사이에 이방인으로서 끼어드는 게 번거롭고 이런저런 간섭을 받는 것도 달갑지 않다고 여기는 도시민들이 많은 까닭이다.

  

  이렇다 보니 기존 마을은 쇠락의 길을 면치 못하는데 근처에 전원주택은 하나둘씩 띄엄띄엄 들어서는 현상이 도처에서 목격된다. 수십 년 지속된 인구 유출이 진정되기 시작했거나 인구 증가세로 반전이 일어났다는 지역들이 일부 나타나는데도, 농어촌 마을이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는 얘기는 잘 들리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마을의 위기’라 부를 오늘의 농어촌 현실 앞에서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할까? 전문가들이 내놓는 대안들도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쇠락과 소멸의 경로에 들어선 마을에는 정책 투자를 억제하고 소재지나 거점 마을 위주로 사업을 시행하도록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다른 한편, 국토의 모세혈관에 비유되는 농어촌 마을의 순 기능을 강조하는 입장도 있다. 또 주민의 삶의 질 확보 차원에서도 마을 정비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마을 여건이 지역마다 다른바, 전국에 걸쳐 일률 적용할 해답은 찾기 힘들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농어촌 마을에 대해 이루어진 접근법에 변화가 필요함은 분명하다. 크게 다음 세 가지 부분에서이다. 첫째, 농어촌 마을 실태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종전보다 한층 정밀한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둘째,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형성을 모색해볼 때이다. 공동체의 공간적 범위나 구성원 등에서 기존 마을 단위에만 한정되지 말고 다양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셋째, 신규 주거 개발과 기존 마을 정비가 공간적으로 연계 추진될 필요가 있다. 귀농·귀촌 수요 증가로 마을이 아닌 곳에서 점적인 분산 개발이 확산되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연계 방식의 마을 정비를 확대하자면 어떤 제도 개선이 요구되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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