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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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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 지워버린 도농교류 운동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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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농경나눔터 농정시선 | 2012년 7월호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마디로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만남이 없는 사회이며,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것은 그 만남의 부재(不在)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식품에 유해 색소를 넣을 수 있는 것은 생산자가 소비자를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로 이루어진 구조이다. 당구공과 당구공의 만남처럼 한 점에서, 그것도 순간에 끝나는 만남이기 때문에,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관계 없음'이기에 서로를 배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느 노교수의 글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세계를 식민화한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우울한 단면을 정확하게 진단한 통찰이다.

 

도농교류 운동의 시작과 시스템의 관여

 

  익명화된 우리 사회 시스템에 대한 저항, 탈출, 치유의 활동으로써 도농교류 운동이 시작된 것은 약 20년 전의 일이다. 그렇게 싹을 틔운 도농교류 운동은 2000년대 들어 결국 시스템에 의해 포획되고 개조되었다.

 

  연대, 진정성, 소통, 대화, 공유, 생기발랄함, 예기치 못한 만남이 주는 설렘, 교환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무형의 가치 등. 시스템이 삭제한 것들이다. 그 빈자리에서 도농교류는 '농어촌체험·휴양마을사업, 관광농원사업 등을 통하여 도시와 농어촌 간에 이루어지는 인적 교류와 농림수산물 등의 상품, 생활체험·휴양서비스, 정보 또는 문화 등의 교환 거래 및 제공 등'이라고 다시 규정되었다(도시와 농어촌 간의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 제2조, 2007년 12월 21일 제정).

 

  상품화된 인간관계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태어난 도농교류가 역설적이게도 '상품 및 서비스의 거래 활동'이라는 변절자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시스템의 힘은 추방하고, 회유하고, 변절시키는 데에서 드러난다.

 

  시스템은 '훈장 수여'를 좋아한다. 변절자의 충성을 지속시키기 위함이다. 그 공적 조서에는 수량화된 실적이 화려하게 열거된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총 9,223쌍의 자매결연, 총 22만 3,185건의 교류 활동, 농촌 마을에 전달된 물품 및 사업체 종사자들에게 판매된 농산물의 누적 화폐가치 약 3,771억 원(연평균 471억 원).

 

  변절한 도농교류 운동과 시스템이 결합하여 낳은 하이브리드, '1사1촌 운동'의 실적이다. 숱하게 많은 '거래'를 촘촘하게 감시하고 금액으로 산출해내는 시스템의 연산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포장된 실적의 이면에는 "1사1촌 운동, 그거 해봐야 별거 없더만. 돈도 별로 안 되고, 귀찮기만 하고……"라는 부정적 평가와 "1사1촌 운동으로 우리 마을 농산물을 다 팔아먹어요. 정말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에요."라는 긍정적 평가가 동시에 존재한다. 어떤 평가가 맞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떤 평가를 얻든, 그것은 이제 '연대하는 운동'이 아니라 시스템의 '건조한 교환 기능'일 뿐이기 때문이다.

 

촌로의 생각, 도시 어린이의 생각, 삭제된 의미의 복원

 

  "도시 사람들이 농산물을 사주는 것으로 알아요. '사준다, 우리가'라는 거지요. 그리고 '농민을 위해서 도와준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지요. 서로가 고마워해야 하는데…… 그 태도가 바뀌어야 해요. '이렇게 수고를 해서 우리 먹을 것을 만들어 주니까 고맙다.'라고. 그러면 또 농민들은 착하니까 더 보태주고 싶은 마음이 있고. '도시 사람들이 안 팔아주면 우리가 또 안 되지 않느냐? 그러니까 고마워서라도 꼬부라진 애호박 하나라도 덤으로 더 준다.'는 식으로…… 아, 이래야지!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고 사람을, 농민을, 수고를 경제적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살벌하고 난폭하고, 이것은 참 못할 일이거든요." 가뭄으로 힘겨운 어느 농촌 마을에서 만난 노인의 말이다.

 

  "논으로 갔다. 논에 들어갈 때 느낌은…… 대박이다! 그래도 재밌었다. 개구리도 잡을 수 있었는데 놓쳐 버렸다. 그래도 정말 재밌고 즐거웠던 것 같다. 무서운 거머리가 나올까봐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쌀이 나는 논에게, 수만 가지 곤충들에게 참 고마워졌다. 논아, 고마워." 난생 처음 논에 들어가 본 도시 초등학생의 소감이다.

 

  도농교류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스템으로부터 삭제되었을지언정 도시와 농촌이 만나는 그 현장에서는 언제나 생생한 언표(言表)로 부활한다. 연대, 진정성, 소통, 대화, 공유, 생기발랄함, 예기치 못한 만남이 주는 설렘, 교환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무형의 가치 등. 도농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 삭제된 의미를 다시 호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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