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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제대로 따라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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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송미령
  농민신문 시론| 2012년 3월 14일
 송 미 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슬로시티(Slow city)’라는 말이 꽤 각광을 받고 있다. 2010년까지 단 1건에 불과했던 슬로시티 관련 브랜드의 특허청 상표출원 건수가 2011년 한해 동안 무려 67건이나 된다고 한다. 슬로시티 브랜드의 상표출원이 이처럼 크게 늘어난 이유는 아마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선정된 슬로시티라는 브랜드를 권리화하고 지역 농특산물 및 지역 내 관광명소 등과 연계시켜 홍보함으로써 지역경쟁력 강화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현재까지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로 선정된 국내 지자체는 10곳이다. 하지만 비단 인증받은 10곳 지자체 이외에도 더 많은 지자체나 마을들이 슬로시티를 지향한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의 슬로시티 심사 조건은 제법 까다로운 편이다. 가령, 인구가 5만명 이하의 지역이어야 하고, 자연생태계가 잘 보호되어야 하며, 지역 주민이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유기농법에 의한 지역 농특산물이 있어야 한다거나, 대형마트나 패스트푸드점이 없어야 한다는 등 여러가지 조건들이 있다.

 

  그렇다면 ‘슬로시티’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번역하면 ‘느린 도시’이다. 원래 이는 ‘슬로시티 운동’으로서 이탈리아 중북부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ti)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마을 한복판 광장에는 마을의 흙으로 주민들이 직접 구운 벽돌을 깔았고, 새 건물을 짓는 대신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서 사용했다. 특히 주민이나 방문객이나 대형마트와 패스트푸드점에서 사다 먹는 음식보다 전통적 먹을거리, 지역에서 생산된 제철의 신선한 농산물로 천천히 조리해 먹는 ‘슬로푸드(Slow food)’가 건강한 삶을 위해 실천해야 할 덕목으로 강조되었다.

 

  결국 슬로시티 운동은 자연, 환경, 전통, 계절을 존중하면서 느리게 살자는 운동이다. 처음에는 이에 대한 거부 반응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의 호응 속에 건강한 관광브랜드로서 자리 잡으면서 이 마을 수익은 몇십배 정도 증가하고 100% 고용률 달성이라는 성과가 나타났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이러한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우리나라 지자체들의 폭발적 상표출원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구와 가치관을 잘 반영한다. 느리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 건강한 삶과 통한다는 것을 새삼 많은 이들이 깨닫고 체험하고 실천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니 농산물을 생산하고 관광 활성화를 위해 경쟁하는 지자체나 마을들에도 슬로시티는 참으로 매력적인 브랜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자칫 슬로시티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슬로시티 운동이 지향했던 본질을 오히려 소홀히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가지게 한다. 슬로시티라고 하는 곳에서 급조된 건물, 어울리지 않는 홍보 간판, 느린 삶과 그다지 관련 없어 보이는 프로그램과 음식도 제법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상업적 관광브랜드로서 슬로시티를 조성하고 홍보함으로써 먼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 누락된 것은 아닌지 제대로 따져 보면서 추진해야 한다.

 

  조금 더디더라도 지역 주민들 스스로 느린 삶의 가치에 대한 재인식, 자발적인 참여, 진정성을 담보한 실천적 태도가 묻어날 때 방문자들도 감동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 이탈리아 작은 마을처럼 성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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