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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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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력의 보고(寶庫)를 되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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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마상진
 KREI논단| 2011년 9월 26일
마 상 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저는 원래 꼴통이었어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죠. 하지만 농고에 진학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어요. 제가 직접 가꾼 고추를 수확하고,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제가 뭔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나도 세상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부모님이 이혼해 식당일하는 엄마랑 살고 있지만, 저는 꼭 농사를 지어 성공하고 싶어요”

   얼마 전, 졸업하면 꼭 농사를 짓고 싶다는 농고 학생이 들려준 말이다.  농업계 학교를 농업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세간의 사람들에게, 이 학생의 말이 얼마나 마음에 와 닿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농업계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이 산업적 측면뿐만 아니라, 학생 개인이 자신의 적성과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분야인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나라의 여러 산업분야 중에 고등학교 단계에서부터 해당 분야 산업인력을 육성할 수 있는 체계를 가지고 있는 분야는 많지 않다. 정부 부처를 중심으로 보면 제조업 등의 공업(공업고등학교)과 정보통신(상업고등학교) 인력을 육성하는 체계를 가진 지식경제부와 농림수산식품부 밖에 없다. 문화, 환경, 보건, 복지 등 대다수 산업 분야는 해당 산업인력을 수급 문제를 대학이후 단계에서나 준비시키고 있기에 초·중·고등학교 단계에서 해당 산업분야의 논리를 교과서나 각종 체험활동에 반영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해당분야 예비 산업인력을 육성하는 전문기관을 학교의 형태로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업계만큼 그에 대한 지원이 소극적인 분야가 있을까?

 

   농업분야에는 후계인력의 중요한 보급처로서 고등학교, 전문대학, 4년제 대학이 있다. 농업구조조정과 더불어, 90년대 이후 많은 농업계 학교가 학교 명칭 및 학과 명칭을 바꾸고 농업 분야 인력보다는 비농업분야 인력육성기관으로 탈바꿈하였다. 130개에 이르렀던 농고는 30개 미만으로 줄었고, 농과대학은 20개 남짓 남아있다. 남아있는 농업계 학교 역시, 전통적인 농업분야보다는 농업관련 산업이나 생명공학, 나노공학, 환경공학 등 신성장 산업 분야로 교육과정을 전환하고 있다. 농업과 연관된 이미지로는 신입생 모집과 졸업생의 취업 등이 어렵다는 이유로 농업과는 관련이 적은 것처럼 꾸미려 한다. 신규 교사나 교수를 채용할 때는 영농 현장의 생산 농업과 관련 전공자나 신성장 산업 분야 전공자를 우선 채용하면서도 교육과정은 그런 방향으로 개편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남아있는 학교들조차도 학교 명칭이나 학과 명칭만으로는 농업계인지 알아차리기가 힘들고, 교육 프로그램도 점차 현장의 생산 농업과는 멀어져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일부에서는 농업계 학교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영농분야로 취업하는 인력이 졸업생의 5%도 되지 않고, 학습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학생들만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더 이상 농업계 학교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냐는 얘기이다. 이에 더해 농업이 살만한 산업이 되면 자연스럽게 사람이 몰릴 것이므로, 미래 인력에 대한 투자보다는 현재의 농업 구조개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임 있는 상당수 농업계 인사들도 이에 동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 농업계 학교에 대한 투자는 매우 미미하다. 지난 정부 119조의 ‘농업·농촌 종합대책’에서 중심 정책의 하나로 내세웠던 ‘정예농업인력종합대책(2004~2013)’의 예산 중 농업계 학교에 대한 투자는 한국농수산대학을 제외하면 0.5%도 되지 않았다. 대다수 예산은 후계인력의 정착, 농업인력의 교육 및 경영개선에 투입되었다. 농업계 학교의 탈농화 경향과 투자 저하는 학생들의 질 저하, 농업분야 진출 부진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더 이상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논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농업계 학생들에 대한 투자는 당장의 영농 인력 배출에도 일부 기여하지만, 장기적으로 농어촌으로 돌아올 수 있는 인적자원 확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필자가 얼마 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귀농자를 포함한 신규 취농자의 85%가 농촌 출신자였다. 어린 시절 또는 학창시절 농어업을 경험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 농어촌에 들어오기가 힘들다. 그만큼 일반인들의 농업·농촌에 대한 심리적 진입장벽은 생각보다 크고, 그 진입장벽은 좀 더 어린나이부터 조금씩 허물지 않으면 해소되기 힘들다. 이러한 관점에서 농업계 학생들에 대한 투자는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될 필요가 있고, 농업계 학생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에 대한 체계적 농업교육이 필요하다.

 

   최근 사회 전반으로 고용 환경이 악화되면서 규모화된 농가를 중심으로 자녀에게 농업을 승계하고자 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농수산대학,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 천안연암대학 등 농업계 전문대학을 중심으로 입학생이 증가 추세이고, 현장 교사의 말에 의하면 일부 자영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영농승계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시점에 필요한 농업계 학교에 대한 투자는 농업에 관심도 없는 아이들을 농업분야로 끌어들이자는 관점의 투자가 아니다. 교육기반이 붕괴되어, 더 이상 농업에 적성을 가진 학생, 농업에 자신의 미래를 던지고 싶은 학생들조차도 농업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없는 암울한 현실은 막아보자는 것이다. 탈농의 기조 속에서 농업계 내부에는 아직 묵묵히 농업교육 현장을 지키며, 생산 농업에 기여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유지·확보하고 학교가 있다. 50여 개 농업계 학교 중에 생산 농업과 관련한 인력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할 의지와 자원을 가지고 있는 학교를 엄선하고 더 이상의 학교 농업교육 기반이 훼손되기 전에 이들 기관을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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