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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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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잘사는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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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마상진
KREI 논단| 2011년 8월 30일
마 상 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잘사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몸이 잘사는 것이 있고, 마음이 잘사는 것이 있다. 몸이 잘사는 것은 편안해지기 위함이지만, 마음이 잘사는 것은 새로워지기 위함이다. 몸이 잘사는 것은 누구나 비슷해지는 것이지만, 마음이 잘사는 것은 제각기 나름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진정 살맛이란 나야말로 남과 바꿔치기 할 수 없는 하나뿐인 나라는 것을 깨닫는 기쁨이고, 남들의 삶도 서로 바꿔치기 할 수 없는 각기 제 나름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는 기쁨이다…”

 

   초등학생 딸아이에게 읽어주던 박완서의 단편 소설 ‘시인의 꿈’에서 따온 것이다. 농정연구자로서 과연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지와 더불어 살기 좋은 농촌, 살맛나는 농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우리 사회가 몸만 잘사는 사회 만들기에만 너무 정신이 팔린 것은 아니었는지, 마음이 잘사는 사회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되물어본다.

   우리 농촌의 활성화를 위해 그동안 다양한 정책사업이 추진되어왔다. 70년대 새마을운동, 80년대 농어촌지역종합개발사업, 90년대 농촌정주생활권개발사업, 2000년대 들어서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신활력지원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농촌개발 분야에 16개 사업을 통해 매년 9천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정부주도로 농촌의 기반시설 중심의 농촌개발사업 이었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주민이 원하는 마을공동사업을 주민참여의 상향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상향식 개발방식이 추진되면서 그전에는 표면화되지 않던 다양한 문제들이 노출되고 있다. 몇몇 성공적인 사례도 있지만 지역 곳곳에서 특정 주민에 대한 집단 따돌림, 사업에서 배제된 일부 주민들의 의도적인 사업추진 방해, 주민 간 파벌형성, 관계 기관에 대한 각종 민원제기, 사법기관에 고소 및 고발, 갈등 당사자의 이주 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단순히 사업 추진을 부진한 것을 넘어 조상대대로 유지되어 온 ‘마을공동체의 붕괴’라는 치명적인 위험수준에 가까워진 마을도 있다.

 

   문제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지적된다. 마을 이장 등 사업주도 리더십의 문제, 주민들의 타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 책임분담과 이익분배의 문제, 의사소통의 문제, 그리고 농촌사회의 폐쇄성 등. 하지만 무엇보다 전통적으로 ‘마음’이 잘사는 삶을 살아온 농촌에서, ‘몸’이 잘사는 삶이 추구되면서 농촌주민들의 삶이 돈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데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할 수 있다. 도시 근로자 가구와 비교되는 농업인의 소득, 도시 주부와 비교되는 농가 주부 활동의 경제적 가치, 도시 기준에 의해 개발된 시험에 따라 도시 학생과 비교되는 농촌 학생의 학력. 우리 농촌은 그동안 끊임없이 도시 기준의 삶, 돈 중심의 삶을 강요받고 있다. 어쩌면 돈이 주인인 사회(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지만, 그에 따라 농촌은 점점 물리적 공간으로나, 정신적으로 황폐해져가고 있다. 그러면서 농업인, 농촌주민들의 삶에 내재되어 있던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는 어느새 부터인가, 그들보다는 소수 운동가들의 일방적 외침이 되어 가고 있다. 농업인 중에 식량 안보 논리 외에, 환경이나 생태계 보전 가치를 위해, 농촌의 경관과 전통문화 보전을 위해 농촌이 유지?발전되어야 한다고, 자신이 살아온 삶을 비추어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최근 농업인에게 경영 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기술만으로는 소득증대에 한계가 있다 하여 그전에는 기업인들만의 전유물 같던 여러 경영전략들을 너도 나도 배우고 있다. 하지만 최신의 생산기술이나 경영기법 등 돈을 벌기 위한 교육이 농촌을 더 황폐하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농업인들에게 지금 더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볼 여유를 가지면서, 가치 있는 삶을 고민해보는 경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돈버는 기술보다는 오히려, 도시민이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극장이나 연주회, 박물관과 강연회와 같은 살아있는 인문학적 체험이 필요하다. 인문학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을 되돌아보며, 깊이 있게 사고하게 하고, 현명하게 판단하게 하고, 마음을 잘살게 하는 경험을 제공해준다. 최근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이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더 활성화 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인문학과 더불어, 삭막하고 메마른 도시에 비추어 농촌의 삶들이 비교되는 현실 속에서, 농업인들이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의식적으로 고민하고 스스로의 삶 속에서 내면화할 수 있게 해주는 체계적 경험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다른 산업에 의해 대치될 수 없는 농업,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대치되지 않는 농업인으로써의 사명감과 삶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농업인들이 ‘마음이 잘 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두레나 계로 대변되는, 과거 우리 농촌 공동체가 추구하던 사회적 삶과 사회적 경제가 재건될 수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다양한 농촌개발사업의 성패, 그리고 우리 농촌이 살맛나는 농촌으로 다시 거듭날 수 있느냐는 농촌마을의 주인인 농업인들이 얼마나 ‘몸’ 보다는 ‘마음’을 택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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