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목록

KREI 논단

KREI 논단 상세보기 - 제목, 기고자, 내용, 파일, 게시일 정보 제공
‘문화자급운동’이 주는 메시지
4068
기고자 송미령
농민신문 시론| 2010년 10월 20일
 송 미 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제10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엘 시스테마’의 창시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선정됐다. 엘 시스테마는 국가 지원을 받는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재단으로서 정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이다.

 

엘 시스테마의 사명은 빈곤지역 아이들에게 음악을 통해 재활하고 범죄행위를 예방하며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마약과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빈민 아이들을 구한 것으로 꽤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1975년 11명의 아이들로 시작한 엘 시스테마 덕분에 2009년부터 LA 필하모닉을 이끌고 있는 최연소 음악감독 구스타보 두다멜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더블베이스 주자 에딕슨 루이스 등과 같은 이들이 탄생했다. 엘 시스테마를 통해 배출된 걸출한 음악가들 덕택에 미인과 석유의 나라로 불리던 베네수엘라의 수식어에 ‘문화 강국’이라는 이름표도 더해졌다.

 

엘 시스테마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문화프로그램의 여하에 따라 개인이 변화하고 사회가 변화하고 국가도 변화한다. 우리 농촌에는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문화적 혜택의 기회가 도시나 선진국 농촌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엘 시스테마처럼 거창하진 않지만 그에 충분히 견줄 만한 자랑스러운 활동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강원 화천군 상서면 토고미마을은 ‘한여름밤의 논두렁 재즈페스티벌’을 개최한 적이 있다.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화천군민, 화천에 놀러와 있던 방문객들 모두를 대상으로 논두렁을 무대로 지역 아이들의 합창부터 전문 가수의 공연까지 펼쳐져 큰 호응을 얻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서는 주민들로 구성된 ‘동네밴드’가 활동한다. 동네밴드는 주로 귀농한 주민들로 구성돼 있는데, 폐교를 개조한 청소년수련관에서 펼쳐진 공연에는 지역의 초등학생부터 시인까지를 망라한 주민들이 동네밴드 활동에 동참했다. 녹록지 않은 시골살림에 대단한 문화생활의 여유는 없어도, 문화와 등지고 살 수 없는 노릇이기에 아예 주민들이 직접 밴드를 만들어 즐겨보자며 출발한 일종의 자생 밴드이다. 문화에 대한 갈증이 일종의 문화자급운동을 발전시킨 셈이다.

 

최근 경남 창녕군 대합면 체육공원에서 열린 ‘풀벌레 노래소리와 함께한 작은 음악회’도 성황을 이뤘다. 대합면주민자치위원회 주민자치센터 창립 기념 및 면민 화합 도모를 위해 농촌적인 음악회를 연 것이다. 농악회 사물놀이 공연부터 청소년예술단의 악기 연주, 노래교실 수강생들이 평소 갈고 닦는 기량을 선보였다. 주민과 소통하며 문화욕구를 충족시켰다.

 

우리 농촌 여기저기서 펼쳐지고 있는 문화자급운동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첫째, 농촌 주민들은 무늬만 문화를 말하는 시설의 설치와 형식적이고 일방적인 공연을 넘어서기를 원한다. 둘째, 농촌 주민들 스스로 문화 생산 과정에 동참하고, 함께 즐기고 어울리는 활동을 통해 서로 협력하고 소통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셋째, 농촌 주민들은 그만큼의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농촌 대상의 문화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규격화된 시설을 공급하는데 주력할 것이 아니라, 농어촌의 자원을 상품화 대상으로만 취급할 것이 아니라, 농촌 주민이 스스로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활동의 여건을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파일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