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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지역사회의 재생, 일자리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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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KREI 논단| 2010년 04월 27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도시화율이 90%를 넘는 이 나라에는 에너지 소비, 교통 혼잡, 범죄,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질환 등 참으로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과도한 인구 집중과 직접 관련이 있다. 그것들을 해결하려 수많은 비용을 치르느니 사람들이 살 만한 농촌을 가꾸어 인구를 분산시키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가라고 되물으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농촌 생활환경의 열악함은 일반인이 도시에 살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피하는 대가로 감수할 만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민이 살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정부가 나서서 투자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되돌아올 답변은 그리 희망적일 수 없다. 농촌 인구가 크게 줄고 있는 판국에 생활편의 시설이나 서비스를 확충하려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인가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악순환 구조가 문제다. 농촌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되면서 주민 생활에 필요한 상업적·공공적 서비스 공급이 줄어들었다. 수요가 줄거나 주민의 지불 능력이 떨어져서 생긴 일이다. 2000년부터 2008년 사이에 농촌 지역에서 고용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업종은 종합소매업, 음식료품 및 담배 소매업, 주점 및 비알콜음료점업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종이다. 지역 내수경제가 위축되면서 일자리가 감소하고 농촌 주민 삶의 질이 저하되었다. 일자리도 부족하고 살기에 편하지도 않은 농촌의 모습은 다시 인구 유출을 부채질하고 유입을 가로막는다. 이런 악순환 구조는 농촌 문제의 집약적 표현이자 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일도양단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꼬인 매듭을 어디부터 풀 것인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만, 농촌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단은 일자리가 있어야 그곳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농촌 주민의 정책 수요 중에서 가장 높은 응답 빈도를 보인 것은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이었다. 과거의 유사한 설문 조사에서는 ‘교통 개발’, ‘소득 증대’ 등이 수위를 차지했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지역 발전에 가장 시급한 일임을 농촌 주민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농촌의 일자리 상황을 살펴보자. 2000년부터 2008년 사이에 농어촌 지역의 농림어업 종사자와 2·3차 산업 부문 사업체 종사자 수는 약 475만 명에서 463만 명으로 2.5% 가량 감소했다. 언뜻 보기에 큰 변화는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8년 동안 농림어업 종사자 수는 무려 55만 7,000명이 줄었음에 비해 2·3차 산업 부문 종사자 수는 44만 1,138명이 늘어 일자리 감소의 폭을 상쇄했다. 여기에서 농촌의 일자리를 늘리려는 기획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일정 수준의 농림어업 활동과 더불어 비농림어업 부문의 다양한 경제활동이 공존하면서 지역 경제의 생태학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농촌 지역경제 다각화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농촌에 농사 말고 무슨 일자리가 있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런 생각은 최근에 시작된 희망적 변화의 가능성을 외면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자료를 조금 더 상세히 들여다보자. 최근 8년 동안 고용이 가장 크게 증가한 부문은 자동차 부품 제조업, 전자부품 제조업 등 일부 제조업 분야이다. 농촌 시·군에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당연히 급격하게 일자리가 늘어난다.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기업을 유치하려 애쓰는 이유이다. 그런데 제조업체의 입지는 농촌 지방자치단체가 원한다고 해서 쉽게 될 일은 아니다. 국가 또는 광역적 수준에서 형성된 산업 부문 간의 연관관계나 물류 여건 등 거시 수준의 조건이 제조업체의 입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미 있는 변화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전반적인 농촌 지역 고용 감소 추세 속에서 제조업 외에 보건, 의료, 복지 등의 사회 서비스 분야의 고용이 증가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인구 고령화로 인한 사회 서비스 수요 증가, 2000년대 중반부터 진행된 복지 정책의 확대 등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사회 서비스 분야를 비롯하여 농촌 주민의 일상생활 욕구에 대응하는 지역사회의 자족적 기능을 확보하려 노력하는 와중에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최근 귀촌 인구가 조금씩이나마 늘고 있으며, 이미 귀촌하여 농촌에 정착한 가구 구성원 중에는 농촌의 아동보육센터, 여성상담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재가노인 복지 서비스 단체 등에서 일하며 지역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인구 유입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목표가 서로 맞물리면서 시너지를 낳는 모델이 될 수 있다.

 

  많은 농촌 지방자치단체들이 심혈을 기울이는 ‘지역 농특산물의 특화’ 전략도 일자리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지역 특화상품이 생산되는 몇몇 지역에서 유의미한 고용 증가를 관찰할 수 있다. 전통 고추장을 내세워 많은 노력을 기울인 순창군에서는 2000년부터 8년 사이에 장류 제조업 부문 종사자 수가 278명 늘었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군에서는 수산 동물 건조 및 염장품 제조업 부문 종사자가 무려 1,486명이나 늘었다. 보성에서는 녹차 가공업 분야에서 105명, 기타 관광숙박시설 운영업 분야에서 113명이 늘었다. 마늘 주산지인 의성군에서 마늘 가공 상품 개발이 시작된 이후 발생한 건강기능식품 제조업 분야 신규 창업자 수가 99명이었다. 지역특화 산업을 꾸준히 육성함으로써 지역 이미지를 제고하고 소득을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농촌에 사람이 살게 하려면 생활환경을 잘 가꾸어야 한다. 좋은 학교, 문화·여가 시설, 의료시설 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에 일자리가 충분히 마련되고 일정 수준을 넘는 경제적 활력이 있어야 그런 생활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수요가 없는 곳에 공급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촌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 바로 농촌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우선, 농촌 지역사회에 필요한 사회 서비스 분야를 잘 조직하고 지역특화 산업을 꾸준히 육성하는 데 정책 의지와 역량을 결집시키는 것이 농촌에 자리 잡은 악순환 구조에 도전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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