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목록

KREI 논단

KREI 논단 상세보기 - 제목, 기고자, 내용, 파일, 게시일 정보 제공
농촌지역개발의 문화전략에 대한 일고(一考)
4348
기고자 김광선
KREI 논단| 2010년 04월 19일
김 광 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지난 사반세기 동안 국가와 지역의 경제기반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질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피터 홀(Peter Hall)에 의하면 이러한 변화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가 제조업 중심의 경제(manufacturing economy)에서 정보경제(information economy)로, 그리고 문화경제(cultural economy)로 이동한 탓이다. 이는 문화가 경제성장의 결실을 기반으로 향유하는 대상에서, 경제성장을 위한 산업기반 또는 국가 및 지역의 성장 동력으로 변화해 왔음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과거 30년 동안 문화산업이 양적인 측면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질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가속화 하면서, 문화에 대한 경제적 논의 역시 그 이전과는 시대를 달리하게 되었다. 1980년대와 90년대 중반까지 문화산업의 양적 증대는 ‘문화의 산업화에 대한 우려’나 ‘위대한 예술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넘어, ‘자본주의 경제의 현실을 재구성’하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그나마 잔존하던 애도의 저항마저도 허공 속에 녹여버리고 있다.

 

  지역개발의 관점에서도 문화전략이나 문화산업은 학문적·정책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1980년대 쇠퇴하던 서구의 몇몇 구산업도시가 도시마케팅이라 알려진 ‘문화적 기함전략’(cultural flagships)을 구사하면서 공간의 물리적 개조 또는 도시경관의 변화를 통해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이를 앞 다투어 모방하려는 세계의 수많은 도시정부에서 지역활성화를 위해 보행자 쇼핑몰, 스포츠 경기장, 박물관, 연구공원, 컨벤션센터 등을 건설하고 각종 페스티벌을 개최하였다. 이들은 상자처럼 규격화된 고층빌딩과 거대한 공장시설, 그 주위에 특색 없이 들어선 고층 아파트로 채워진 모더니즘 도시공간의 위압적 스펙터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이들이 지향하는 도시공간은 환상의 도시(fantasy city), 소비자 도시(consumer city), 엔터테인먼트 기계(entertainment machine)를 채우는 ‘와우요소’(wow factors)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 공간의 스펙터클이었다. 이것이 지역개발의 제1세대 문화전략 중 1라운드라 할 수 있다.

 

  문화적 기함전략(1세대 문화전략)의 2라운드는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의 창조계급론(creative class)에 의해 촉발되었다. 창조계급론의 지역개발에서의 함의는 “오늘날 경제성장의 핵심요소는 창조적 인재이며 이들은 일자리(기업)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호하는 살만한 장소를 찾아 움직이며, 따라서 장소가 바로 우리의 경제와 사회를 조직하는 중심 단위”라는 것이다. 마이클 포터(Michael E. Porter)의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 이론에 비견될 만한 ‘구역의 이점’(jurisdictional advantage) 이론이라고 플로리다 스스로 자화자찬하던 창조계급론의 영향으로 많은 지방정부에서 창조적 인재들이 선호할 만한 음악이 있는 풍경, 예술적 경관, 야외 스포츠?예술 활동, 카페문화, 유흥시설 등을 조성하느라 분주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플로리다의 창조계급론에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불과 5~6년 전이다.

 

  문화적 기함전략이라 하는 장소마케팅 전략은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에서도 주요한 지역개발 전략으로 채택되어왔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빠짐없이 상업화된 축제를 발굴하고 개최하고 있는 것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많은 곳에서 실패를 경험해 왔다. 농촌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도시의 문화적 기함전략 실패를 오히려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 도시의 실패가 ‘순간의 도시’(ephemeral city), ‘성인용 디즈니랜드’, ‘시민 없는 도시’가 된 데서 비롯된 것처럼, 장소의 진정성(authenticity)과 주체성이 사라지면 지역개발의 문화전략이 실패로 끝난다는 사실은 농촌지역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지역개발의 전략으로 보다 최근에는 문화산업 육성이 많은 지방정부의 관심이 되고 있다. 지역개발의 2세대 문화전략이 시작된 것이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자동차 수 만대를 만들어 파는 것보다 이윤이 훨씬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들어 한류(韓流)를 경험하면서 영화, 드라마, 음반, 게임 등의 문화산업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식되었다. 국가적으로 문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제정하여 다양한 육성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지방정부에서도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적지 않게 인식하고 있다. 농촌지역의 자치단체 중에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소를 건설하고 영상산업과 같은 문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애쓰는 곳도 자주 눈에 뜨인다. 이러한 노력에 의해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만도 2008년 37만2천명이 넘고 있으며, 이는 전산업 사업체 종사자 중 2.3%에 해당한다.

 

  문화산업이 무시 못할 정도의 비중으로 성장하였지만 주로 대도시(광역시)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종사자의 70% 가량이 대도시에 몰려 있으며, 전형적인 농촌이라 할 수 있는 군 지역에는 불과 2.7%의 종사자만이 근무하고 있다. 문화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하위 부문이 이른바 신경제부문에 기반하고 있는 콘텐츠산업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뉴욕, 로스앤젤레스, 런던, 파리, 동경과 같은 소수 세계도시에 문화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되고 있는 점은 신경제부문과의 관계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농촌은 문화산업을 포함한 지역개발의 문화전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까?

 

  최근 도농교류가 활성화되고 이것이 농촌 활성화를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인식됨에 따라 농촌지역개발의 문화전략은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또 한편 농촌 주민의 구성 역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동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문화산업은 이들에게 다양한 취업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산업부문 중 하나이다. 문화산업은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 정의된 부문 외에도 관광산업(특히 역사?문화관광, 체험관광 등), 스포츠산업, 식품산업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콘텐츠 기반의 문화산업이 주로 대도시 입지성향이 강하다는 측면을 생각하면, 농촌은 지역개발을 위한 나름의 문화전략이 필요하다.

 

  농촌이 도시와 차별화된 지역개발의 문화전략을 모색하는 길은 바로 기본에 충실하는 방법이다. 본래 문화의 어원은 ‘땅(자연)을 경작하고 가꾼다’는 의미의 라틴어 꼴레레(Colere)에서 기원한다. 이러한 어원은 농촌이 문화의 창발지(創發地)이자 문화산업에 있어 투입요소의 생산지로서 잠재성이 풍부함을 암시한다. 땅을 경작하고 자연을 가꾸면서 농촌지역에 형성되고 전해 내려온 다양한 인문현상(문화)이야 말로 농촌을 문화의 보고(寶庫)로 만들어줄 중요한 자산이자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자원이다. 도시의 경관적 스펙터클과 순간성, 오락적 쾌락 등에 식상해져 버린 현대인들이 이제 문화의 진정성을 좇아 농촌을 방문하지 않는가? 또 웰빙 바람을 타고 우리 땅에서 생산한 것을 우리 기술을 적용해 만든 상품들이 가치를 더 인정받고 있지 않는가?

 

  기본에 충실해야 함을 다시 떠올리며 농촌지역개발에 있어 문화전략을 추진할 때에?? 다음의 세 가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역사의 작용(play of history)이다. 많은 지역에서 지역개발의 문화전략에 실패한 이유는 역사의 작용을 무시한 탓이다. 문화란 갑자기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많은 지역에서 모방(cloning)에 의한 이식된 문화로 지역개발을 꿈꾸어 왔다. 둘째는 지역적 차별성이다. 역사(시간)의 작용이 전통문화를 창출하는 토대라면, 지역(장소) 간 차별성은 향토문화를 키워내는 토대이자 장소경쟁과 상품시장에서 한 발 앞설 수 있는 경쟁력이다. 셋째는 지역의 주체성이다. 거대한 외부자본을 들여 도시 전체를 오락실(entertainment machine)로 전락시키는 대도시의 ‘성인용 디즈니랜드’ 전략이나 여피를 양산하여 주민 없는 지역을 만드는 ‘창조계급론’의 지역개발전략은 농촌에서 결코 부러워할 전략이 아니다. 지역개발의 문화전략은 주민이 즐거워 참여하고, 주민의 삶의 질이 윤택해져 즐거워야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이다.

 

  문화적 기함전략과 문화산업 육성. 어떤 측면에서는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하며 다른 어떤 측면은 이제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우리 농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제 농촌지역개발의 문화전략에 대해서도 학문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심도 있게 고민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파일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