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목록

KREI 논단

KREI 논단 상세보기 - 제목, 기고자, 내용, 파일, 게시일 정보 제공
농촌에 사회적 기업을 육성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4307
기고자 김정섭
 자선이나 봉사 같은 좋은 일도 무한정 계속하기는 어렵다. 그 일에는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하다. 한편, 무작정 돈을 벌기로 작정하면 좋은 일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계속해서 이윤을 축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면서도 일정 정도의 수익을 내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기업과 비영리단체(NPOs)의 운영 원리가 결합된 사회경제 활동 조직을 두고 사회적 기업이라 부른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고 종사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기업의 모습이다. 한편, 발생한 이윤을 참여자들에게 분배하거나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비영리단체의 모습이다.

 

  서울 서교동에는 노동부의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식당이 하나 있다. 이 식당에서 파는 음식의 재료는 전라북도 변산의 한 마을에서 생산한 유기농산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식당의 차림판이다. 메뉴와 무관하게 가격은 ‘1,000원 이상’이다. 그 아래에 설명이 붙어있다. “드실 만큼 드시고, 돈은 버는 만큼 내세요.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5,000원 이상을 내셔도 좋습니다.” 가격표가 이런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도 와서 1,000원만 내고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이 식당의 기본 철학이다. 완전 무료 식당으로 하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식자재를 구매해야 하고, 식당 종업원 월급도 주어야 한다. 맨 땅을 파서 식당을 경영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음식 값을 받기로 한 것이다. 이 식당은 다양한 형태로 활동하는 사회적 기업의 한 예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기업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이다. 당시 정부는 대규모 공공근로사업을 추진했다. 그것이 ‘노임살포식 단기 일자리 제공’이라는 비판과 더불어, 여러 지역의 비영리단체들이 공공근로사업에의 민간 참여를 주장했다. 정부가 이를 수용하여 시작한  ‘공공근로 민간위탁사업’은,본격적인 사회적 기업 정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 기업 정책이 탄생하는 출발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이후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자활지원사업을 포함시키고 ‘사회적 기업 육성법’을 제정하는 등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을 확대했다.

 

  현재 전국에서 251개의 사회적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농촌지역은 여전히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의 사각지대이다. 250여 개의 사회적 기업 중 절반 가까이가 수도권에 소재한다. 나머지의 대부분은 지방 대도시에 있다. 농촌지역에 소재한 사회적 기업은 5%도 되지 않는다. 농촌지역에서는 사회적 기업이 불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다. 농촌에서 관심과 고민이 부족했던 것이 주된 원인이다. 농촌에서 사회적 기업이 필요한 이유와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자.

 

  농촌 주민이 누릴 수 있는 사회서비스의 양과 질이 전반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전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려 해도 인적 자원이나 재원 문제가 뒤따른다. ‘농촌 사회적 기업’은 사회서비스 전달체계를 효율화하여 복지를 증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충남의 어떤 곳에서는 주민 단체가 나서서 독거노인 수발, 간병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가 비용의 일부를 제공함으로써, 재정적으로 취약한 지역사회 비영리단체가 지속적으로 활동하도록 돕는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위기를 맞이한 수많은 농촌 지역이 귀농 인구를 유치하려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도시민이 귀농하여 전업농으로 지역에 정착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초기 자본이 많이 소요된다. 농지를 두고 토박이 주민과 경합하는 일까지 일어날 수 있다. 자본과 토지가 부족하다면 농업소득만으로는 가계를 꾸리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귀농인에 대해 지역사회가 갖는 ‘굴러들어 온 돌’이라는 인식이 정착의 걸림돌이 된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려 귀농 가구의 지역사회 참여 활동, 즉 사회적 일자리를 만드는 지방자치단체가 있다. 방과 후 농촌 아동을 보육하는 일, 읍?면 자치센터에서 노인?여성 등을 대상으로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 등을 귀농 가구의 구성원이 맡게 한다. 귀농가구에 일정한 농업 외 고용을 보장하는 동시에 토박이 주민과의 융화를 촉진하려는 것이다.

 

  주민들 사이의 사회적 연대가 튼튼할수록 그 지역의 발전 잠재력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발전은 더불어 이뤄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업화를 전면에 내세운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숱한 이촌탈농을 경험한 우리 농촌은, 그러한 발전 잠재력을 소진했다. 줄어든 인구, 그나마 남아 있는 이들도 연대와 협동의 원리에 의해 조직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여기서 사회적 기업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전북의 어떤 지방자치단체는 큰 규모로 농산물을 출하하기 어려운 소농들의 농산물을 수집하여 빈곤층에게 식품으로 공급하는 사회적 기업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소농들에게는 판로를, 빈곤층에게는 먹을거리를 제공하면서 지역 내 사회적 연대를 두텁게 한다는 취지이다.

 

  정책의 사각지대인 농촌에서도 사회적 기업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심을 갖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의 자발적 결사체 등 민간부문 주체들도 당면한 지역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서 사회적 기업 활동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다. 다양한 아이디어, 참여자들의 헌신과 노력, 공공부문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등이 잘 어우러진다면, ‘농촌 사회적 기업’은 질곡이 되어버린 농촌 사회 문제를 푸는 단초가 될 것이다.

  복지 증진, 고용 창출, 지역발전 역량 강화. 농촌의 사회적 기업을 육성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이다.

 

파일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