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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계 학교, 역할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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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마상진
KREI 논단| 2009년 7월 28일
마 상 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흔히 농업계 학교라 하면, 농업 고등학교, 농업계 전문대학, 농과대학 등을 가리킨다. 전통적으로 이들 교육 기관은 후계 영농 인력의 중요한 보급로였다. 농업계 학교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농업이라는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직업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왔고, 농업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해왔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농업계 학교가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느냐에 대한 농업계 내부의 문제 제기가 있다. 졸업생의 5%도 되지 않는 인력이 영농에 종사하고 있는 최근의 실태는 이러한 주장의 설득력을 더 뒷받침 해준다.

최근 학교나 학과 명칭 변화로 농업계 학교를 구분하기가 힘들어 정확한 통계를 잡기는 힘들지만, 과거보다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전국의 농업계 고등학교(농업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있는 고등학교)는 73개가 있고 이중 순수 농업고등학교는 25개가 남아있다. 전문대학의 경우 24개 대학에서 농업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있는데, 이중 농학, 원예, 축산 등 생산 농업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있는 곳은 8곳에 불과하다.

4년제 대학의 경우 농업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있는 학교는 37개이지만, 단과대학 형태로 농업관련 학과들이 있는 학교는 28곳이다. 이렇게 남아있는 상당수 농업계 학교와 학과들도 전통적인 생산 분야를 포기하고 농업관련 산업, 또는 생명공학(BT), 정보공학(IT), 나노공학(NT), 환경공학(ET) 등 신성장 산업 분야로 교육과정과 정체성을 전환하고 있다. 특히 4년제 농과대학의 경우 종합대학 차원의 발전 계획에 따라 신입생 모집, 졸업생 진로 등을 고려하여 탈농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대학에서도 신규 교수를 채용할 때 영농 현장의 생산 농업과 관련된 전공자보다는 신성장 산업 분야에 국제적 수준의 논문을 쓸 수 사람을 우선 하다보니 점차 학교는 현장의 생산 농업과는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농업계 고등학교 역시 이미 10여년 전부터 교육목표가 과거 "중견 농업인 양성"에서 "농생명 산업에 관한 기초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여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고, 급변하는 산업 사회에 창의적으로 적응하여 자아를 실현하며, 농생명 산업과 농촌 발전에 기여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형성"하는 것으로 전환한 상태이다. 한국농업대학,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 천안연암대학 등 현장 중심의 영농 인력 양성을 교육 목표로 표방하는 몇몇 농업계 전문대학 외에는 농업계 학교를 통해 배출되는 영농인력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지난 3년(2005~2007)간 4년제 농과대학 전체에서 배출한 현장 영농인력 규모가 한국농업대학 1개 학교의 영농 진출자 규모 밖에 되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우선 농업계 학교를 후계영농인력의 보급처로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좀더 넓은 의미의 농업인력 육성이란 관점에서 농업계 학교를 바라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전통적 생산 농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이들 졸업생이 생산 농업 분야에 다 수용될 수 없는 상황이다. 농업계 학교에게 더 이상 전통 분야를 고집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학생 개개인의 진로 선택권 과 행복추구권을 심각히 침해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농업계 학교 교육은 장기적으로 우리 농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농업도 인력 구조가 고도화가 필요하기에 애그리비즈니스(Agribusiness), 즉 생산 농업 전·후방(R&D, 투입재·경영 지원, 가공, 유통)에서 지원하는 전문화된 인력의 육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대표적 농업선진국의 사례로 들고 있는 네덜란드의 농업경쟁력은 농업인이 전국민의 2~3% 밖에 되지 않지만, 7~8%의 전·후방 인력이 이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7%의 영농인력을 채 1%도 되지 않는 인력이 지원하고 있다. 이미 농업계 학교는 현실적으로 농업 인력 구조 고도화에 맞게 교육 목표를 전환했다고 봐야 한다. 이런 기관들에게 과거 설립 당시의 역할을 여전히 요구하는 것은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다.

다만 농업계 학교가 전통적인 생산 농업과의 연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도록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리라 본다. 그 중요한 역할로는 점차 세분화, 전문화 되어가는 전공분야 간의 벽을 넘어 생산 농업의 사회·경제·역사적 그리고 문화적 역할과 가치에 대한 농업교양(Agricultural Literacy) 차원에서의 교육을 수행하는 것이다. 본교 학생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주민, 그리고 인근 지역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지역에 농업계 학교가 존재하는 의미를 부각시키고, 나아가 최근 강조되는 식생활 분야에 대한 체계적 교육까지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과 주민들이 농업에 대해 보다 우호적인 태도와 더불어 올바른 소비자 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최근 점차 떨어지고 있는 농업·농촌에 대한 지지와 추가적 부담 의사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들이 잠재적인 농업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생산 농업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영농 중심 특별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농림부가 2006년부터 농과대학생 2, 3, 4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영농정착교육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과정에서는 학생들에게 전공과목 외에 농업인의 농장에서의 인턴실습, 방학중 장기현장실습, 성공사례교육, 성공농업인과의 만남, 해외연수, 미니농장 프로그램 등 현장 농업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과정을 이수하면서 상당수 학생이 농업이 이렇게 해볼 만한 산업이었는지 몰랐고, 새로운 농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반응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과정을 통해 비 농업분야 진로를 생각하는 학생 다수가 영농분야로 진로를 전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4년제 농과대학 졸업생 진로 조사에 의하면 매년 졸업생의 25%가 넘는, 3,000명 이상의 학생이 실업상태에 처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는데, 이들 실업상태에 처할 학생들에게 농업과 관련한 적절한 교육 경험을 제공한다면 이들이 농업분야에서 보다 큰 가능성을 발견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이는 학생들의 합리적 진로 설계를 위해 직업 선택의 기회 확대 차원에서도 매우 바람직한 활동이다. 현재는 대다수 농과대학생들에게 생산 농업 분야로의 진로 경험 자체가 단절된 것이 문제이다.

시대 변화에 맞는 농업계 학교의 새로운 역할. 그것은 전·후방 농업 관련 산업 인력의 배출을 통해 생산 농업을 지원하는 고도화된 인력 배출 외에도 교양 농업교육기관으로서의 지역사회에서의 의미 회복, 영농 관련 특별 프로그램의 개설을 통해 학생들의 직업 선택 기회를 확대시켜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 전통적인 생산 농업과 멀어져가고 있는 농업계 학교들이, 본래 자신들이 해오던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관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가다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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