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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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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경관 가꾸기는 조화로운 주거지 정비가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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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성주인
KREI 논단| 2009년  7월  15일

성 주 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

 

외국을 돌아본 많은 이들은 우리 농촌만큼 자연풍경이 아름다운 나라가 드물다고 말한다. 산과 강, 들이 어우러진 농촌 풍경을 노래와 시, 그림으로 예찬한 이들이 그토록 많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농촌의 주거지 경관을 자랑거리로 얘기하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한옥이나 전통가옥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마을도 없지 않으나, 딱히 기원을 찾기 힘든 제각각 양식의 건물들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농촌 풍경이다.

오랜 세월 농촌 정비에 힘을 써온 서구 및 일본 농촌과 우리 농촌의 가장 극명한 대비점은 바로 주거지 경관에서 찾을 수 있다. 적어도 농촌 경관에 대해서는 독창성을 한껏 발휘하기보다는 조화로움을 지키는 것이 미덕임을 선진국 사람들은 진작에 체득한 모양이다.

최근 필자는 일본 도호쿠(東北)지역의 하치로가타(八郞潟) 간척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간척지 내에 새롭게 조성된 농촌 주거단지를 살펴보고는 그 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1만5천ha가 넘는 광활한 면적의 간척지에서 농사를 짓고 생업을 영위하는 3천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주택지는 일본의 미래형 농촌 모델로 발전시키자는 야심에 걸맞게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널찍한 필지에 들어선 단독주택들은 꽤 규모가 크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주택 외관이나 색채, 재질 등을 관리하는 공동의 건축협정 같은 것이 없다고 하는데도, 특별히 튀거나 눈에 거슬리는 건축물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는 비단 하치로가타 간척지에만 한정되는 얘기도 아니다. 일본의 농촌 어느 곳이든 대체로 비슷한 양식의 주택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주택들 간에 조화가 이루어지니 전체적으로 차분한 인상을 주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건축물들이 꼭 값비싼 재질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표준적이면서 저렴하게 지을 수 있는 주택 양식이 널리 보급되어 있기에 이러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일본인의 주거 선호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인들 중에는 도시의 좁은 공영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체로 이들은 기회만 된다면 넓은 부지에 정원을 갖춘 단독주택에 살겠다는 희망을 갖는다. 도시 근교에 단독주택지들이 외연적으로 퍼져 있는 현상에서 평균적인 일본인들의 주거 선호가 어떠한지 가늠할 수 있다.

반면 우리의 주택에 대한 기호는 이와 판이하여, 아파트에 대한 확고한 선호가 대세이다. 우리나라에도 자연을 접하고 텃밭을 일구면서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나, 분양 예정인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인파가 운집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꿈은 여전히 도시의 아파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주택과 관련한 새로운 혁신은 모두 아파트에서 창출되는 상황이니, 누군가는 '단독주택의 멸종'을 주장하기도 한다.

국민의 보편적 꿈이 그러하니 들판 가운데 '나홀로 아파트'가 산을 등지고 선 풍경을 농촌에서 확인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시골 읍내는 말할 것도 없고 제법 번화하다 싶은 면 소재지에도 한두 동 짜리 아파트가 들어선 경우가 드물지 않다. 아파트 일색의 주거 문화가 전국 표준으로 자리잡은 우리의 현실에서 이렇다 할 전원형 단독주택단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 농촌의 경관이 혼란스러운 원인 중에는 도시화 이후 단독주택을 바탕으로 한 주거 문화가 발전할 기회를 못 가졌던 것도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효율적인 주택 공급과 두터운 중산층 형성에 공헌한 우리나라 아파트의 순기능은 충분히 인정한다. 다만, 농촌에서까지 아파트나 공동주택 공급 위주로 주민들의 주거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최근 공급된 농촌 아파트 중 상당수가 미분양 사태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자금난에 허덕인 지방 건설업체가 중도에 부도나서 앙상한 골재만 올라간 채 방치된 아파트 한두 동쯤은 농촌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농촌의 '나홀로 아파트'는 주민들의 꿈을 충족시켜 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해답이 못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 농촌에 어울리는 전원형 주거 모델을 개발하려는 정책적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에서는 1990년대부터 문화마을사업을 추진해왔고, 최근에는 전원마을조성사업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농촌형 표준 주택모델을 개발·보급하는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한정된 정책사업들만으로 농촌형 주거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지금까지 농촌정책에서 부수적인 영역에 머물렀던 농촌 주택 문제를 앞으로는 더 중요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특히 1970년대에 대거 들어선 슬레이트 지붕 주택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러한 노후 주택 정비 작업을 농촌형 주거 모델의 보급·확산의 기회로 활용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아파트 일변도의 주거 양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주거 문화를 농촌에서 먼저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정책적으로 살려보는 것도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농촌 경관을 농촌답게 가꾸는 데는 주택 정비가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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