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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풍년, 시장기능 왜곡되지 않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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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동규
농민신문 기고| 2008년 10월 22일
박 동 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진왜란 당시 좌의정 등의 중책을 맡았던 서애 류성룡은 〈징비록(懲毖錄)〉이라는 임진왜란 전란사를 남겼다. ‘징비’란 지나간 날들을 징계하고 뒷근심이 있을까 삼간다는 뜻이다. 1592년부터 7년에 걸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원인, 전황 등을 상세히 기록해 뒷날에 있을지도 모를 더 큰 우환을 경계하고자 한 것이다. 정부는 2005년에 양정개혁을 단행했다. 추곡수매제도는 생산을 자극해 쌀 부족 문제 해결에 큰 역할을 했으나, 수급 여건이 변하면서 공급과잉을 초래하고 농가소득 향상에 한계를 보였다. 때문에 추곡수매제도를 폐지함으로써 공급과잉을 초래했던 점을 징계하고, 재고누증이라는 우환을 경계하고자 했다. 시장기능으로 수급 균형을 달성하도록 하되, 쌀값이 하락해 소득이 줄어드는 경우에 대비해 ‘쌀소득보전직불제’를 도입했다.

 

올해 벼 재배면적이 작년보다 줄어들었으나 작황이 좋아 쌀 생산량은 4.7% 정도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에 공급되는 밥쌀용 수입쌀도 작년에 비해 31.7% 늘어난 6만3,000t으로 계획돼 있다. 쌀 공급량이 작년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소비량이 매년 줄어드는 추세를 감안하면 쌀값은 작년보다 하락하는 것이 경제학적 결론이다. 하지만 농업인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올해 생산비가 상승했으므로 벼값이 인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곡종합처리장(RPC) 경영자는 농업인의 요구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 벼값 인상에 따른 후유증을 우려하고 있다. 공급량이 많으므로 단경기에도 쌀값이 상승하지 않을 수 있다.

 

10a당 쌀 생산비는 작년에 비해 7.5%가 상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농광열비와 비료값이 작년에 비해 각각 52.1%, 32.5% 상승했고 기타 재료비도 전반적으로 올랐다. 하지만 영농광열비와 비료값이 생산비에서 각각 1%와 7.1%를 차지하므로 국제원자재값 상승이 쌀 생산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수확량 증가가 단위면적당 생산비 상승의 상당부분을 상쇄한다. 10a당 생산량이 작년 466㎏에서 올해에는 495㎏으로 6.2%나 늘어나 쌀 80㎏당 생산비는 작년에 비해 1.2%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

 

쌀값이 하락하고 생산비가 상승해 1㏊당 쌀 소득은 작년에 비해 1.6% 정도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직불금을 포함한 소득은 오히려 작년보다 많아질 수 있다. 쌀소득보전 직불금은 지난 3년간 연평균 1조2,165억원이 지급돼 쌀농가의 소득안정에 기여한 바 크다. 농업인의 요구를 반영해 지역에 따라 RPC의 벼 매입가격은 작년보다 10% 정도 높게 협의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벼값이 수급 이외의 요인으로 인상되면 RPC는 벼 매입량을 줄이려 할 것이고, 그 결과 시장가격은 더욱 하락할 수 있다. 벼 매입가격을 인상해 경영이 어려워진 RPC는 품질 향상을 위한 시설투자를 하지 못하는 등 여러가지 부작용이 발생한다. 또한 벼 매입가격 인상은 다음해의 벼 재배면적에 영향을 미쳐 공급과잉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쌀값이 수급 이외의 요인으로 결정되는 정책을 징계하고 시장기능에 의존하기로 한 것이다. 쌀 생산비가 상승해 소득이 하락한 것이 문제라면 생산비 상승분을 지원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산비 상승을 가격에 연계하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우환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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