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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 만들기,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승부를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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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KREI 논단| 2008년 7월 29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서 큰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도시에서 하던 일이 잘 안되면 ‘에라,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나 짓지’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세상이다. 대체로 농업은 어렵고 고달픈 직업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많은 자산을 갖고 넓은 농토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도시 사람들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농업인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라고 권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도시 근로자 가구 1가구당 연평균소득이 약 4,200만 원이다. 농가 1호당 연평균소득은 약 3,200만 원이다. 평균치만 놓고 본다면, 도시에서의 직업을 포기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겠다는 선택은 큰 실책이 될 수 있다. 연 4,000만 원의 소득이 있어도 사교육비, 의료비, 주거비 등 새 나가는 돈이 많아 빠듯한 살림살이를 할 수 밖에 없다. 연 소득 3,200만 원이면 참으로 힘든 살림살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어려운 여건을 마다하지 않고 농사를 지으러 농촌을 찾아가는 30대, 40대 도시민들이 아주 없지는 않다. 생태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려는 나름의 가치관 때문에, 농업·농촌이 좋아서, 또는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하는 경제적 기회를 농업에서 찾았기 때문에 귀농하는 사람들이 있다. 농업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농업이나 농촌사회가 직면한 중대한 과제라고 누구나 인정하지만, 귀농인들이 소수라고 해서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살펴 볼 일이다.

 

 ‘귀농하는 이들은 어딘가 모자라서 도시에서 적응을 못하니 시골로 내려오는 사람들이겠지’라는 식의 인식이 지역사회에 존재하지는 않는가? ‘전국에서 귀농 인구가 가장 많다는 전북 진안군에서도 귀농 인구가 1년에 25~30명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전국 귀농 인구를 다 합쳐도 몇이나 된다고 정책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식의 인식이 정부나 관련 학계 종사자들 사이에 퍼져 있지는 않는가? ‘농업인에 대한 지원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귀농한 사람이 내 몫을 빼앗아가는구나’라는 식의 생각을 이웃 농업인들이 하고 있지는 않는가?

 

귀농해서 여러 해가 지나고 지역사회에 정착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외로움’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도시에서 유지하던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포기하고 시골에 내려왔지만, 지역사회는 그를 쉽게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한동안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귀농인들이 자주 경험하는 씁쓸한 일 중 하나는 마을 이장을 통해 소개되는 농업부문의 각종 보조금 사업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어떠어떠한 지원사업이 있다는 사실을 귀농인들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귀농인들이 날마다 읍면사무소 게시판이나 군청 홈페이지를 살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귀농 지원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육 프로그램도 있고 자금을 융자해주는 정책도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귀농해서 지역사회에 정착하기까지 그런 정책의 도움이 정말로 컸다고 말하는 이를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무엇이 문제일까? 귀농하려는 사람들에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이 있다는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탓일까? 혹시, 지원 정책의 내용이 귀농인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 탁상공론식의 것은 아니었는가? 그래서 그림의 떡에 불과한 정책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귀농 지원 정책은 농과계 대학이나 농업고등학교를 육성하는 정책 못지않게 중요할 수 있다. 한국농업대학을 제외하고 나면, 전국의 숱하게 많은 농과대학 또는 농업고등학교 졸업생 중에 실제로 농업에 종사하는 인력이 몇이나 되겠는가?  

 

1987년 650명, 1997년 4,649명, 2006년 1만 811명. 약 20년 사이에 17배 가까이 늘어났다. 무슨 숫자인지 궁금할 것이다. 이것은 일본 농업회의소가 동경에 설치한 신규취농상담센터와 각 지방의 지부에서 상담을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간 귀농상담건수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매년 1만 명도 넘게 귀농을 할까 말까 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인데, 실제로는 그중 몇 명이나 귀농하는가? 겨우 1%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렇게 미련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겨우 1% 밖에 성공을 못하는 데, 숱하게 많은 인력과 정부 돈을 들여서 상담을 하고 있으니... 어디 상담뿐이랴? 귀농 희망자들을 인턴사원으로 영농조합법인이나 농업회사법인에 취직을 시켜 1~3년 농사 연습을 하게 하는 ‘귀농촉진사업’에서 ‘귀농 박람회’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일들을 펼치고 있는 곳이 일본이다. 단 1%의 귀농자라도 확보하기 위해서. 여기에 거론하지 않은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의 다양한 귀농자 유치 활동들을 살펴보면, 경이로울 뿐이다. 그만큼 일본에서도 농업인력 부족의 문제, 더 나아가서 농촌 인구 과소화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우리나라의 농업인력, 농촌 인구 문제의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다. 다름 아닌 1%의 가능성이라도 적다고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끈기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나 농촌 지역사회나 이제 모두 단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집요하게 승부를 걸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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