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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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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파동, 역사는 되풀이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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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최세균
KREI 논단| 2008년 5월 21일
최 세 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0여년 전,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므로 자연대로라면 과잉인구로 인한 식량부족은 피할 수 없다”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배고픔을 이기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이러한 예상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산업혁명, 녹색혁명 등 기술진보는 생산성 증대를 통해 맬서스의 예언을 뒤집었다.

 

세 차례의 심각한 곡물파동

 

세계적으로 심각한 곡물파동과 그에 따른 가격 폭등은 전쟁 또는 흉작 등에 의해 지난 100여년 간 세 차례 정도 발생했다. 제1차 및 2차 세계대전, 그리고 1970년대 초반에 가격 폭등이 가장 심했다. 1970년대 초에 발생한 곡물파동은 오일쇼크, 흉작, 소련의 곡물수입 등 세 가지 요인이 결합되면서 국제 곡물시장에 전쟁 못지않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곡물파동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으며, 짧게는 1-2년 내에 진정되었다. 전쟁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 발생한 1972-73년의 곡물파동은 석유의 무기화에 대응한 식량의 무기화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를 계기로 개발도상국들은 식량자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농업투자와 증산 유인책을 증가시켰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국은 식량 증산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휴경지 축소, 농업기반 시설 및 연구에 대한 투자 증가, 농기계 구입 증가 등이 진행되면서 국제 농산물 시장은 공급 과잉 시기로 전환되었다.

 

공급과잉 시기

 

지난 100여년 간 국제 밀 가격이 가장 낮았던 때는 1930년대 초의 대공황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수요 감소와 보호무역주의의 강화에 따른 국제 교역 감소로 가격이 폭락하였다. 가격이 낮으면 영농 의욕도 떨어지게 마련이고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다 보면 다시 공급부족과 가격상승은 되풀이된다. 미국의 ‘1933년 농업조정법’에 의한 휴경보상제도, 낮은 가격 등으로 생산이 감소하면서 곡물 가격은 다시 완만한 상승세를 나타내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지나면서 국제 밀 가격은 대공황 때에 비해 4배 가까이 상승하였다.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곡물 생산국인 미국과 유럽공동체(EC)의 가격지지 정책은 계속되었다. 이로 인해 국제 곡물가격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완만한 하락세를 나타냈으나 여전히 증산을 자극할 만큼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녹색혁명에 따른 생산성 증대는 가격지지와 수요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큰 폭의 농산물 가격 하락을 불러왔다.

 

1970년대 초에 발생한 세계적인 곡물파동으로 각국의 식량자급을 위한 증산정책은 더욱 고조되었다. 증산정책으로 1980년대에 들어와 식량자급을 이룩하게 된 국가가 크게 늘어났다. 인도, 중국 등이 식량자급을 이룩하였고, EC는 수출국으로 전환되었다. 그 결과 세계적인 농산물 공급과잉과 재고증가 문제가 초래되었으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농산물 수출국 간의 소위 ‘수출보조금 전쟁’이 시작되었다. 주요 농산물 수출국인 미국과 EC는 결국 가격보조와 수출보조에 따른 재정적 압박이 커지면서 이를 국제 시장에 전가시키고자 하였다. 미국과 EC는 1986년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에 농업부문을 포함시켜 보조금 삭감과 시장개방을 통한 수출시장 확보라는 목적을 달성하였다.

 

곡물파동, 이전에 비해 장기화 가능

 

국제 곡물 가격은 시기별로 등락이 있기는 하지만 지난 100여년 간 안정적인 하락추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최근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발전에 따른 수요 증가와 곡물의 연료용 수요가 증가하면서 곡물가격이 폭등하였다. 역사적인 사실로 볼 때 곡물가격의 폭등은 곧 안정을 찾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지만 곡물의 연료용 소비라는 사상 초유의 변수가 등장한 것을 고려하면 예측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최근의 곡물파동은 이러한 수요 측면뿐만 아니라 UR 협상 등 국제적 움직임과도 관련이 깊다. UR 협상 이행기간이 이미 경과되어 농산물 증산을 위한 유인책이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특히 농산물 수입국 농민들은 값싼 수입 농산물로 인해 경작을 포기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의 곡물파동은 바이오 연료용 소비, UR 및 FTA에 따른 시장개방 확대, 증산 유인책의 감소 등 소비와 공급 측면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의 파동에 비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인류는 기술개발, 자원의 효율적 이용 등을 통해 이러한 사태에 잘 적응해 왔다는 것이다. 곡물가격 상승은 휴경지 및  미개발지 경작의 증가,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 증가, 농업인들의 영농의욕 고취 등을 통해 증산을 유도할 것이다. 소비 측면에서는 유전자변형 농산물(GMO), 성장호르몬 투여 축산물 등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됨으로써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할 가능성이 있다. WTO 도하개발의제(DDA) 협상 등 시장개방 협상에서 농산물 증산을 억제하는 기조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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