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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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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유통 개혁, 산지유통조직에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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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국승용
KREI 논단| 2007년 10월 23일
국 승 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

 

한 대형마트가 품질은 유사하면서 가격은 저렴한 PL(Private Label: 유통업체 자체브랜드) 상품 판매를 대대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동일한 양의 NB(National Brand: 제조업자 브랜드) 상품과 PL상품을 각각 구매했더니 PL상품이 20%이상 저렴했다는 언론보도가 그 뒤를 이었다. 소비자의 호응이 확인되면 다른 대형마트도 PL상품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PL상품의 확대 추세를 보며 국내시장 점유율 1위의 중견 제조업체들조차 판매가격 인하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생산자 브랜드 농산물이 뉴질랜드 제스프리의 키위와 미국 선키스트의 오렌지 밖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형마트들은  생산자 브랜드를 부착한 국내산 농산물 취급에 소극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PL 상품의 확대에 따른 가격 인하 압력이 농산물만을 예외로 둘 것 같지는 않다. 먼저 소비자 가격 인하라는 명분을 앞세워 수입농산물을 PL 상품으로 판매하는 비중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고, 국내산 농산물 간의 가격경쟁 역시 심화될 것이다. 경쟁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출혈 경쟁을 통해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거래가 성사되고 대형마트의 매출만 증가하는 현상은 공정하다 할 수 없다. 대형마트에 의해 촉발된 가격 인하 경쟁이 농산물 납품 단가 인하, 농가 수취가격 인하라는 연쇄반응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32개 공영도매시장을 경유해 판매되는 청과물의 비중은 약 45%, 대형유통업체의 청과물 취급량은 14% 내외이다. 수치만 본다면 도매시장이 대형유통업체보다 3배가량 많은 양을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할인행사 여부에 따라 가락시장 청과물 가격이 급등락하는 현상이 적지 않게 관찰되고 있어 공영도매시장만으로는 농가가 공정하게 거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재와 같이 중소농가가 개별적으로 생산·유통하는 방식으로는 안정적인 판로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농업인들이 산지유통조직을 구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협업화·계열화하여 거래 규모를 확대하는 것, 스스로 거래교섭력을 강화하여 권익을 지킬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산지유통조직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도매시장 출하량 중 산지농협을 통한 계통출하 비율은 45% 수준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서류상 농협을 경유한 것처럼 형식을 갖추었을 뿐 대부분 개별 농업인의 출하가 계통출하로 분류되고 있다. 이처럼 서류상 실적에 얽매인 수동적인 사업으로는 산지유통이 변화할 수 없다. 산지유통조직은 공동선별을 통한 농산물의 상품화는 물론, 판로 개척, 신상품 개발, 전처리 등 가공, 급식 등 사업 영역을 개발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또한 경험과 능력을 갖춘 조직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적지 않은 지역 농협의 경제사업이 경상수지는 적자를 보더라도 무이자 자금과 같은 보조금을 통해 손익분기를 맞추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조금에 의존하여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반면 농협이 아닌 산지유통조직들은 운영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여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제주도의 농업회사법인 통통은 감귤을 판매하여 최근 3년간 연평균 200억 원 수익을 올리고, 지난해에는 100억 원 규모의 신규 투자로 현대화된 유통시설을 갖추었지만 운영자금이 부족하여 지난 7월 부도 처리되었다. 물론 부도의 1차적 책임은 재무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통통의 경영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산지유통조직을 뒷받침해 줄 지원체계가 미흡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산지유통조직에 대한 전문적인 경영 컨설팅과 운영자금 지원 체계가 수립된다면 농업분야에 막대한 투자가 물거품이 되는 일도 막을 수 있을 것이며, 효과적으로 산지유통조직의 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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