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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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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심비디움과 호접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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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윤식
KREI 논단| 2007년 8월 9일
김 윤 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심비디움(Cymbidium)과 호접란(胡蝶蘭)은 서양란의 일종이다. 심비디움이라는 단어는 배(boat)를 뜻하는 라틴어 심바(cymba)에서 유래되었는데 꽃 모양이 배 모양처럼 생긴 탓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심비디움은 3년이란 오랜 시간을 잘 길러야 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기술이 없으면 키우기 어렵다. 하지만 꽃을 피우면 매우 화려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만들어 꽃 중의 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심비디움은 여러 송이의 꽃이 2․3열로 위 아래 다발로 피며 개화기간도 무척 길어 한번에 30~40개의 꽃을 볼 수 있다. 시장에서 고가에 팔리는 것은 물론이다.

 

심비디움이 2․3열로 많은 꽃을 피우는 반면 호접란은 하나의 꽃대에 많은 꽃이 피운다. 호접란은 꽃이 크고 화려한 반면 잎의 수가 적다. 호접란의 원명은 팔레놉시스(Phalaenopsis)인데, 꽃 모양이 나비 모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호접란도 심비디움과 같이 꽃이 아름답고 한번 피면 쉬이 지지 않는다. 두 서양란 모두 집이나 사무실에서 키우기 쉬워 서양란 중에서 인기가 가장 많다.

 

지난 1990년 중반 심비디움과 호접란은 나란히 중국에 진출한 적이 있다. 심비디움과 호접란 모두 꽃이 화려하고 오래가기 때문에 중국에서 선물용으로 인기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심비디움과 호접란은 중국의 춘절(春節)을 전후하여 선물용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없어서 못 팔 만큼 심비디움과 호접란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서양란의 운명은 크게 갈렸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심비디움은 여전히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되고 중국 현지에서도 한국 농가가 생산을 계속 하고 있다. 하지만 호접란은 더 이상 수출도 되지 않고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10여 년 사이에 중국에 진출한 심비디움과 호접란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심비디움은 적어도 3년은 키워야 꽃을 피운다. 더욱이 심비디움에 대한 수요가 춘절에 집중되므로 춘절에 맞추어 꽃을 피워야 한다. 다른 시기에 꽃이 피면 좋은 가격을 받기 어렵다. 시장에서 제값을 받고 팔기 위해서는 좋은 꽃 모양을 만들고 예쁜 색깔이 나도록 해야 할 뿐 아니라 3년간 키워 춘절에 꽃이 피도록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는 심비디움 재배기술이 습득하기에 상당히 까다로움을 의미한다. 여기에 3년이란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 변화에 따른 위험도 그만큼 크다. 중국 농가들이 쉽게 심비디움 재배에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 농가가 중국에 진출하여 심비디움을 재배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중국 농가들과의 기술력에서 차이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호접란은 1-2년 정도면 꽃을 피워 시장에 팔 수 있다. 재배 기술이 심비디움에 비해 상대적으로 까다롭지 않을 뿐더러 시장 변화에 따른 위험도 그만큼 적다는 말이다. 따라서 중국 화훼농가들이 서양란 재배에 뛰어든다면 심비디움보다는 호접란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예상이 적중하여 호접란 재배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중국 화훼농가들이 대규모로 호접란 재배에 뛰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에 저가의 호접란이 대량으로 쏟아졌고 화분 하나에 90위안이던 호접란 가격이 20위안까지 하락하였다. 결국 한국의 호접란은 중국시장에서 경쟁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얼마 전 운남성을 방문했을 때 심비디움을 재배하는 현지 한국인 농장 주인을 만났다. 운남성은 기후가 꽃 재배에 적합하여 한국의 심비디움 농가들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곳으로 현재 아홉 곳에서 심비디움을 재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중국 농가와의 기술력 차이가 점차 좁혀지고 있어 심비디움의 미래도 그리 밝지만은 않다고 한다. 현재 그가 보는 중국 농가와의 기술 차이는 3-5년 정도. 이 기간 동안 한국계 농가들은 기술력의 차이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이 새로운 품종을 도입하거나 개발하는 길일 수도 있고 새로운 재배기술을 개발하는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길도 쉽지 않다는 게 한국계 농장들의 고민이다. 중국의 한국계 심비디움 농가들은 모두 개인적인 차원에서 중국에 진출하였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투자를 확대할 여력이 별로 없다. 한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반면,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직접 화훼부문에 대규모 투자도 하고 농가도 지원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심비디움 농가들이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서 중국으로 심비디움을 수출하는 농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춘절을 전후해 중국에서 소비되는 100만 분 중 40만 분 정도는 우리나라에서 수입되는데 중국 농가와의 기술력 차이가 줄어들면 40만 분의 수출도 어려워질 것이다.

 

앞으로 미국과의 FTA가 발효되고 DDA 협상이 타결되면 더 많은 농산물이 수입되어 국내 농산물과 경쟁하게 될 전망이다. 농산물이든 공산품이든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력의 차이는 품질 차이를 만들고 이는 곧 시장에서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품질의 차이를 만드는 기술력이 없다면 외국에 진출을 하던 국내에서 외국 농산물과 경쟁을 하던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힘들다. 삼성이 매년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연구 개발에 쏟아 붓고 있는 이유도 다른 반도체 업체와 기술력 차이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기술력의 차이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시장을 잃을 수 있다. 이는 국내에서든 외국에서든, 농산물이든 공산품이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외국 농산물과 경쟁하기 위해 좀더 농업 기술 부문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이다. 기술력의 차이가 크지 않으면 중국의 호접란 시장에서 일어났던 일이 국내의 여느 농산물 시장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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