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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 보존해야 고려인삼 명성도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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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이동필
프레시안 기고 | 2006년 09월 15일
이 동 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위기의 고려인삼 (끝)]

 

죽은 사람도 일으켜 세운다는 신비의 명약 산삼을 캤다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최근 보도만 보더라도 '일월산에서 100년 묶은 천종산삼'(5월25일), '계란처럼 생긴 희귀산삼'(5월30일), '꿈에 무를 먹고 산삼 112뿌리'(6월7일), '금두꺼비 꿈을 꾸고 태백산에서 100년 묵은 산삼 11뿌리'(6월8일), '태백산에 나물 캐러 갔다가 131g짜리 산삼 포함 28뿌리'(6월9일) 등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삼삼을 캤다는 얘기가 세상에 소개됐다.

산삼, 그렇게 많은가?

하지만 최근 한 방송사가 이들 산삼의 실체를 추적한 결과는 허망하기 짝이 없다. (1) 몇 달 동안 천종산삼을 실제 봤거나 캤다는 심마니를 수소문했으나 만날 수 없었으며 (2) 수백만 원 짜리 장뇌삼을 모은 뒤 가짜 심마니를 내세워 억대가 넘는 천종산삼으로 둔갑시킨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3) 일부 중국 장뇌삼까지 천종산삼으로 둔갑하고 있다는 등으로 사기극의 전모가 드러났다(SBS 스페셜, <산삼의 두 얼굴>, 8월6일).

SBS 제작진은 산삼업계 전체가 서로의 비리를 알면서도 '공범의식'으로 진실을 은폐해 왔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산삼이나 장뇌삼에 대해 체계적인 기준은 물론 담당부서도 마련해 놓고 있지 않은 정부의 무대책도 꼬집었다.

하여튼 인터넷을 검색하면 산삼을 취급하는 사이트만도 137개나 되는, 그야말로 산삼 열풍이 불고 있지만 정작 "산삼은 누구나 채취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이 진짜 산삼인가?", "산삼을 수출할 수 있는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어느 누구도 책임 있는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산삼관리 시스템의 현주소다.

▲ 2004년 강원도 산삼산에서 한 심마니가 캤다는 산삼. 검정콩과 흰콩으로 약통의 크기를 비교하고 있는데 이처럼 겨우 콩알 만한 산삼까지 채취한다면 어찌 종이 보존될 수 있겠는가? ⓒ프레시안


사실 산삼의 문란한 유통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조 17년(1790) 7월 내의원제조 홍억이 "가삼(家蔘)이 성행한 이후 자연생 인삼을 공납치 않고 모두 서울 인삼상인이 청부받아서 경상도 가삼을 사용한 듯 하다"는 장계를 올리기도 했다. 그 이후 정조 21년 6월 팔포무역을 모두 홍삼으로 사용하도록 결정하기까지는 형식적이나마 공납은 산삼을 원칙으로 한 것으로 파악된다.

'산삼', 그것은 무한정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산삼이란 산야에서 자생하는 약초로 그 생산량에 한도가 있는 것인데 공물이나 왕실의 약용으로 소비하는 양은 점점 늘어나니 백성들의 부담 역시 '억지 춘향이'로 늘어만 갔다. 결국 방납(防納)이나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는 쪽으로 해결책이 마련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인삼유통은 매우 문란할 수밖에 없었다.

영조 29년(1753) 12월 당시 약방제조 이천보(李天輔)가 왕에게 "삼상(蔘商)을 모조리 주살한 후에야 나라꼴이 되겠다"고 상소했다는 기록에서 그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영조 44년 4월 평안관찰사 정당(鄭棠)은 이렇게 상소했다.

"신이 취임하여 강계의 인삼폐단이 극심한 것을 듣고 순시 차 그 지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신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길가에서 울었습니다. 수레에 매달려 목 놓아 소리 높여 울며 나를 살려 달라 애원하기도 했습니다. (…) 신이 들은 바에 의하면 인삼 채취는 옛날에 비하여 감축되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입산한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미 오래 전부터 본체가 큰 인삼은 전혀 없고 채취할 수 있는 것은 왜소한 것으로서 그 중에는 송곳같이 작은 것도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인삼이 완전히 사라질 우려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600호가 줄어들었습니다. 호수가 감축되면 매호 납부하는 부과량은 커지게 됩니다. 만약 종전과 같은 상납액을 충당코자 한다면 나머지 호에다가 차례로 할당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호당 4~5근에 달하리란 계산이 나왔습니다. 상납액이 호당 배가 오르면 오로지 남은 길은 도망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무렵 이미 산삼의 멸종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결국 가삼 재배의 허용과 홍삼이란 새로운 대체상품의 개발로 우리나라 인삼의 명맥을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 2000년 7월 인삼전문가 장경석 씨가 감정한 예시한 산삼. A부분은 약통으로 엄지손가락처럼 커서 저지대에서 자란 특징을 보이며, B부분은 산삼의 턱수로 이런 형태는 흔하지 않다. CㆍD부분은 색깔이 달라 성장환경이 틀린 것을 접착제로 붙인 것으로 밝혀졌고, E부분은 굵고 길지만 봉양이 없고 수분함량이 많아 밭흙 같은 저지대에서 자란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가짜산삼인 셈이다. ⓒ프레시안


'산삼 열풍',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삼삼이 많이 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의 산삼은 과도한 채굴과 6.25전쟁 등으로 인해 거의 멸종되었다는 것이 국제적인 통설이다. 얼마나 귀했으면 산삼 한 뿌리에 몇 천만 원, 몇 억 원씩 하겠는가?이와 같은 상황에서 밑도 끝도 없이 불어 닥친 산삼 열풍을 어떻게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려인삼은 태권도, 김치 등과 함께 문광부가 선정한 '한국문화상징 Best 10'에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산자부가 선정한 '세계 일류상품'에도 포함되어 있어 우리 전통문화의 상징 역할을 하는 대명사의 하나다. 그 중에서도 산삼은 고려인삼의 성가를 지탱하는 원천으로 세계적인 민족문화의 유산이기 때문에 이를 잘 보존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더 이상 누구나 꿈만 잘 꾸면 언제든지 산삼을 캘 수 있다는 국민들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풍전등화와 같은 고려인삼의 위기 속에서 산삼을 보는 국민의 시선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두 눈 멀쩡히 뜨고 속는' 산삼열풍은 수그러들 리가 없다. 어쩌다 한두 뿌리 남아 있을지 ?霽4? 산삼을 찾아 너도 나도 산으로 간다는 애기는 2000년 고려인삼의 명맥을 단절하는 행위로 마치 멸종위기 동물로 보호되고 있는 호랑이 잡으러 뒷산에 오른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어찌 세계인의 웃음거리가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라도 산삼 캐러 산에 가겠다는 생각 자체를 우리 마음속에서 지워야 하는 것이다.

▲ 6월25일 계룡산에서 김 모 씨가 캤다는 100년 넘은 산삼(왼쪽), 2005년 10월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에서 심마니들이 캤다는 3억 원짜리 130년 묶은 산삼(가운데), 2006년 6월 강원도 태백산에서 이 모 씨 가족이 산나물을 캐다 발견했다는 131그램(60~70년생)짜리 산삼. 결국 모두 가짜로 밝혀졌다(오른쪽). ⓒ프레시안


산삼, 우리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멸종한다

잠시 다른 나라의 예를 살펴보자. 1716년 무렵에야 야생삼을 처음 발견한 캐나다의 경우 30∼40년 간의 남획으로 자원이 고갈됐다. 결과적으로는 어린 저질삼을 섞어 파는 바람에 이를 수입하던 중국이 1760년대부터 미국으로 수입선을 옮겨 버렸다. 그 뒤 미국에서도 약 100여 년간 무절제한 산삼 채굴로 자원이 고갈되자 가격이 치솟고 수출길이 막혀 결국 싸구려 재배삼으로 대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회동리 가리왕산에 있는 산삼봉표(강원도 유형문화재 113호). 비석 전면 가운데 세로로 "江陵府山蔘封標"라고 크게 음각하고, 우측에 "旌善界", 좌측에 "地名馬項"이라는 작은 글씨를 음각했다. 비석을 세운 것은 영조 3년(1723) 무렵으로 당시 정부가 산삼을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증표다. ⓒ정선군


다만 미국의 경우 1975년 야생 화기삼을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 Species of Flora and Fauna: CITES)>에 등록하고 철저하게 수확과 유통, 수출입을 통제한 끝에 지금은 세계 최고의 야생삼 수출국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야생 화기삼이 멸종되지 않도록 일정수준의 자원을 보전할 수 있도록 생산자와 유통업자의 등록, 수확시기와 방법, 거래확인서 발급 등을 규정한 <화기삼관리법(State Wild Ginseng Regulation)>을 갖추고 정부가 엄격하게 관리한 지 30년여 년만의 결실인 셈이다.

법의 주요 내용에는 (1)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야생삼을 캐거나 판매하려는 자는 소정의 수수료를 납부하고 야생삼채굴허가를 받아야 하며, (2) 수확하려는 삼이 최소한 10년 이상 성장한 것이어야 하며, 수확시기는 씨앗이 영그는 가을철(8.15∼12.31)로 한정하고, 수확할 때 씨앗은 그 자리에 다시 묻는 것을 의무화하는 등 수확방법을 지정하고. (3) 수확한 야생삼은 유통허가를 받은 상인에게 판매하도록 되어 있는데 유통업자는 8온스 이상 거래시 거래사실(거래자, 물량, 가격 등)을 기록, 보관하고 이를 주정부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4) 수출업자는 지역의 CITES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소에 거래허가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때 수출하는 삼이 어디서, 어떻게 구한 것이라는 주의 확인서를 첨부해야 한다. 아울러 수출은 미 농무성이 지정한 5개 항구 중에 한 곳을 통해 이뤄지는데 농무성 동식물보호국과 식물검역소의 조사를 받아야만 통관할 수 있다.

산삼이 없으면 고려인삼의 명성도 흔들릴 수밖에

아시아에서도 산삼의 생존이 심하게 위협받자 지난 2000년 러시아가 중국과 우리나라에게 야생 동양삼(Panax ginseng C.A. Meyer)의 CITES 공동등록을 제안한 적이 있으나 당시 "재배삼 거래에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리 정부의 반대로 러시아만 등록했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를 보면 일시적인 불편이나 어느 정도의 부담은 있겠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자국삼의 품질에 대해 국제적인 인식을 개선함으로써 화기삼산업의 발전을 위한 기반을 확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고 보면 고려인삼의 명성도 산삼덕분에 얻어진 만큼 산삼을 멸종위기동식물 보호대상으로 설정하여 CITES에 등록하고, 산삼의 지속적인 존속을 보장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수확과 유통이 이루어지도록 정부가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나라에 산삼자원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파악하고, 수확할 수 있는 연령과 수확방법 및 계절을 지정하는 등 구체적인 대안을 연구개발하고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

▲ 미국 야생삼의 주산지인 아팔래치안 산맥 주변의 농가에서 산삼을 채굴해 양지바른 창가에서 말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비교적 쉽게 야생삼을 발견할 수 있지만 1975년부터는 멸종위기동식물보호조약에 등록돼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프레시안

 

이 경우 필요한 산삼수요는 임간농업(agroforest) 방식으로 장뇌삼을 재배하여 충당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장뇌삼의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전국의 임야를 대상으로 재배적지를 파악하고, 국공유지의 장기임대를 허용하는 한편, 종자와 재배기술을 개발·보급하고 어디서 어떻게 생산한 것인지 책임 있는 생산자단체가 스스로 품질인증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

생소하지만 산삼의 보존과 장뇌삼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들의 생산과 유통, 수출입을 엄격히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산업적 발전은 고사하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생각해보라. 지리산의 반달곰을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모두 잡아가 버린다면 어떻게 이 땅에 곰이란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으며, 자연생태와 문화적 측면에서 '지리산 곰'이 가진 의미는 어떻게 보존될 수 있겠는가? 오랜 세월동안 숱한 전설과 문화적 자긍심의 원천이 되어 왔던 산삼을 보전하고 이를 둘러싼 온갖 불미스러운 거래로부터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보호하는 길은 제도적으로 산삼관리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그 첩경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상이 물려준 소중한 문화유산을 우리 대에 끝장을 내버려서는 안 된다는 국민 스스로의 자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옛날 심마니들은 입산기일이 정해지면 보름 전부터 매일 몇 차례씩 깨끗한 물로 몸을 씻고 부부간의 잠자리조차 금할 만큼 산삼을 신성시 했다고 한다. 속없는 등산객이나 일확천금에 눈이 먼 모리배들의 손에 멸종위기 산삼을 방치해 두기에는 '2000년 고려인삼 종주국'이란 이름이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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