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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고려인삼을 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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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이동필
프레시안 기고 | 2006년 09월 04일
이 동 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위기의 고려인삼 4]

 

국내 홍삼시장의 규모는 2000년의 1700억 원에서 2003년 4200억 원, 2005년 5700억 원에 달해 지금은 전체 우리나라 기능성식품 소비의 3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2005년 인삼재배면적은 1만4153ha로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양의 인삼을 생산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심치 않게
고려인삼의 위기설이 나돌고 많은 사람들이 인삼산업의 장래를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내시장·재배면적 늘어도 국제시장 비중 크게 줄어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고려인삼의 수출이 줄어들고 국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위축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삼수출액은 1990년의 1억6400만 달러를 정점으로 점차 줄어 2005년에는 8900만 달러에 머물렀다.
세계 인삼생산량 중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1978년 73.2%에서 97년 30.2%로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중국과 미국은 각기 19.1% 및 6.4%에서 47.5%와 15.1%로 늘어나고 최근에는 캐나다의 비중도 급격히 늘고 있다.
  
  그렇다면 고려인삼의 수출이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과점 형태를 띤 국내 홍삼시장에 안주한 나머지 경쟁국에 비해
저렴비용으로 좋은 원료삼을 생산하고, 해외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세계시장을 향한 마케팅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특히 인삼소비의 큰 흐름이 효능에 기초한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성식품 형태로 전환된 지 오래이고, 홍콩이나 중국조차 수입삼 중 서양삼의 비중이 90%를 넘는 데에다 최근에는 유기농 청정인삼과 장뇌삼의 소비가 크게 늘고 있어서 '6년근 고려홍삼'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래도 국내시장이 탄탄한데 무슨 걱정이냐고 할지 모른다. 사실 1996년부터 홍삼의
제조유통이 자유로워지면서 일반 소비자들도 홍삼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고 몇 해 전부터는 인삼을 달여 먹을 수 있는 중탕기가 개발·보급되어 홍삼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 미국에서 가장 많은 화교들이 살고 있다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전 세계에서 모인 온갖 종류의 한약재 가운데 인삼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다. 서양 사람들은 대부분 대형슈퍼의 건강식품코너에서 인삼제품을 구입하지만 동양인들은 여전히 한약상을 찾는다고 한다. ⓒ프레시안


  수입관세 없어지고 '장백산 청정인삼' 들어와도 우리시장 유지될까?
  
  그러나 우리나라의 인삼시장은 고율의 수입관세(대략 홍삼류 750%, 수삼 및 백삼류 250%)에 의해
보호 받고 있어서 FTA와 같은 수입개방 시 얼마나 자생력을 가지고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도 값싼 중국산 인삼이 알게 모르게 수입되어 국내 인삼계가 휘청거린다지만 앞으로 장백산에서 제대로 기른 좋은 품질의 청정인삼이나 장뇌삼이 들어오더라도 국내시장이 온전하게 보전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데에 고민이 있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 정부도 인삼의 생산
구조 조정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그러나 영세한 경작규모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으며 연작피해나 높은 중도폐지율, 출입경작, 낮은 영농기계화 수준, 포전매매 등 생산과 유통 상의 고질적인 문제는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특히 1996년 <홍삼전매제도>의 폐지로 인삼산업에 대한 계획수립과 연구개발 및 수매 등 각종 지원과 관리를 담당해 오던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민간기업으로 바뀌면서 관련업무가 농림부와 보건복지부, 산림청 등 여러 부처로 분산되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를 들어 스위스 파마톤 사가 인삼사포닌을 표준화한 자양강장제품 '진사나(Ginsana)'를 개발해 해마다 30억 달러나 수출한다는 점이
바로 인삼산업이 가진 블루오션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인삼수출은 <인삼산업법>에 의해 농림부가 관할하지만, 제품은 <식품위생법>과 <건강기능성식품에관한법률>에 의해 보건복지부가 따로 담당하니 인삼산업에 대한 종합대책은 고사하고 제조업체의 실태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효능·제품 연구개발과 차별적 유통만이 살 길!
  
  고려인삼의 위기는 중국이나 미국, 캐나다 등 경쟁국의 도전에도 원인이 있지만 우리나라 인삼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세계시장의 흐름에 부응하는 다양한
제품개발을 등한히 한 채 아직도 옛날 고려인삼의 명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위기의 고려인삼을 살리는 방법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보면서 차분하게 고품질 고급인삼을 생산, 차별적으로 유통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인삼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1) 고품질인삼 생산기반을 확충하고 기계화를 통해 생산비를 줄이는 한편, (2)
가공산업의 육성으로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인삼제품을 개발하고, (3) 철저한 품질관리와 유통구조 개선으로 제값을 받고 거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4) 효능에 기초한 홍보 및 판촉의 강화로 국내외 시장에 고려인삼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5) 차별적 유통을 위해 국제기구에 고려인삼을 '지리적 명칭 보호품목'으로 등록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고려인삼이 무엇이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다른 나라 삼과는 어떻게 다른지 과학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또한
유럽과 남미 등 새로운 시장에 파고들기 위해서는 음용이 편리한 인삼제품을 개발해야 하며, 중국이나 홍콩 등 전통적인 동양삼시장에서는 효능이나 품질에 있어서 서양삼 및 중국삼과의 차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인삼이 약이라면 어떤 사람이, 하루에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부작용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인삼의 성분이나 효능에 대한 연구와 임상실험이 공익적 차원에서 보다 종합적이고도 전략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아쉽다.
  


  


  '가짜 산삼'보다는 '제대로 관리·생산된 장뇌삼'으로
  
  산에서 재배한 장뇌삼이나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청정인삼이 웰빙과 건강을 중시하는 세계 소비자들의 트렌드에 부응한다는 점에서 이제는 우리도 장뇌삼을 산업적으로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품종과 재배기술 개발, 그리고 품질기준을 마련하고 생산-유통 및 수출입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야생삼이 멸종됐다고 알려진 나라에서 100년이 넘는다는 산삼이 사기극 논란 속에서도 수십 뿌리씩이나 버젓이 경매되는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삼이 본격적으로 재배된 지난 300여 년 동안 경작적지 부족문제가 심화되는 가운데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청정인삼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장뇌삼을 생산-유통해 왔다는 점에서 이를 현실화하고 관련제도를 정비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짜 산삼'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 시대에도 그것은 정부 당국의 골머리를 썩이던 문제였던 모양이다. 늘어나는 가삼(家蔘: 당시는 산삼을 공물로 바쳤기 때문에 집에서 재배한 인삼이나 장뇌삼은 가짜로 취급됐다) 재배로 골머리를 썩이던 약방제조 이천보는 영조 29년(1753) "삼상(蔘商)을 모조리 주살한 후에야 나라꼴이 되겠다"고 몰아붙인 반면 평안관찰사 정당은 영조 44년(1768) 인삼공납제의 폐해를 상소해 백성들의 과중한 부담을 경감해 주었다. 그 무렵 다산 정약용 선생도 가삼 재배를 옹호하는 시를 남기는데 결국 정조 21년(1797)에는 8포무역에 모두 홍삼을 사용하도록 제도를 바꾸어 이른바 고려홍삼이라는 새로운 상품을 세계시장에 내놓게 된 것이다.
  

▲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의 인삼산업. 세계 최대의 인삼농장 '차이나타'의 간판과 홍콩으로 선적을 앞둔 서양삼. 아래는 인근 캄루프 시에 위치한 인삼제품 생산회사 '선모어'. 인삼을 이용한 다양한 미용제품과 온천이 유명하며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외국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프레시안


  "인삼이 원래는 산속풀인데 지금은 사람들이 밭에 기르니/사람 힘에 의지하여 자라나지만 본 성질은 사람 몸을 보양하는 것/닭과 집오리가 귀천(貴賤)이 다르건대 사람과 가까워 업신여김 같이 받네/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산속이라도 산삼을 기르는 건 한줌 흙일뿐/ 대지의 정기가 땅속에 가득한데 어찌 유독 시골 밭만 정기가 없으리요/오곡(五穀)도 백초(百草)속에 섞여 있다가 세월이 흘러서 사람이 재배한 것/대성(臺省)에선 어진 인재 돌보지 않고 산림 속에 노둔(魯鈍)한 자만 찾고 있네." (다산시선, 1795)
  
  말하자면, 쓸데없이 산삼에 현혹되지 말고 인삼 혹은 장뇌삼을 제대로 길러 온당한 값어치를 인정받게 하는 게 옳지 않겠느냐는 다산 선생의 지극히 합리적인 제안인 셈이다. 그리고 나서 200여 년, 그 동안 세계시장을 재패하기도 했지만 이젠 지친 고려인삼을 다시 산으로 돌려보내 옛 명성을 되찾아야 할 때가 됐다.
  
  인삼산업에 대한 종합 관리 없이는 종주국 위상 회복 안돼
  

▲ 중국 길림성의 장뇌삼 재배단지 안내표시판.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장뇌삼을 산업적으로 재배-관리하고 있는데 이 농장은 2000년부터 친환경농산물이란 ISO9001 품질인증까지 해 주고 있다. (장철수 해외연수보고, 2006.4). ⓒ프레시안


  장뇌삼을 산업화하기 위한 관리시스템의 정비 외에도 농림부와 보건복지부, 산림청 등 중앙부처를 포함해 인삼업계와 생산자, 그리고 소비자들이 인삼산업의 발전을 위한 역량을 결집할 수 있도록 추진체계와 관련제도를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삼수출의 절반 이상이 제품류인데 이는 정작 다른 부처에서 관리하고 있으니 업무가 아귀가 안 맞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현재 농림부와 보건복지부로 나뉘어 있는 뿌리삼과 인삼제품의 관리 행정의 근거를 인삼산업법 체제로
통합하고 장뇌삼을 포함하여 고려인삼의 효능과 규격, 품질관리, 표시제도 등도 하나의 부처에서 통일된 기준을 가지고 종합적이고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밀수와 보따리장사를 통해 들어오는 인삼을 엄격히 단속하고 크기에 따라 "왕대, 왕왕대, 왕왕왕대"로 거래되는 수삼(水蔘)의 품질기준을 만들어 유통질서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행정체계와 제도를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길만이 정녕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위기의 고려인삼산업을 구제하는 길이라면 누가 그 책임을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또한 북한과 중국 등 인삼생산국들과 인삼외교를 통해 효능규명과 활용에 관한 연구, 표준화와
품질관리시스템 확보, 그리고 유통질서 확립을 위해 공동 노력함으로써 인삼종주국으로서 위상을 스스로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정부나 학계는 물론 생산자와 가공 및 유통업자, 그리고 소비자까지 우리 국민 모두가 고려인삼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이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 나갈 때 비로소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2000년 인삼종주국의 위상을 재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순조 5년(1805) 추운 겨울, 귀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상인들의 사정을 볼모로 청나라 상인들이 가격담합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맞서 5000근이나 되는 인삼을 불속에 집어던진
임상옥의 지혜와 열정이야말로 오늘날 고려인삼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가 아닐까? 언제나 그렇듯이 기회는 위기 속에 그 실마리를 숨기고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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