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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만에 세계시장에서 추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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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이동필
프레시안 기고 | 2006년 08월 14일
이 동 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위기의 고려 인삼 2.]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리 인삼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위기의 요소가 '인삼의 동북공정'을 시도하는 중국으로부터만 연유하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인삼의 종주국'을 자임하는 우리만 그 위기의 실상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이런 경우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의 가장 적확한 용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세계시장에서 우리의 인삼, 즉 '고려인삼'은 그 위상을 잃은 지 오래다. 1990년대 이후 세계 인삼시장의 구조가 대격변을 겪는 와중에 우리의 인삼산업만 제자리걸음, 아니 후퇴해 온 것이 오늘날과 같은 '고려인삼의 추락'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할 경우 현실의 흐름 속에서 결국 도태되는 것이 어디 인삼뿐일까? 그 실상을 한번 살펴보자.
  
  고려인삼의 추락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 인삼은 고부가가치
농산물이자 전통의약품의 원료로서 농가의 중요한 소득원인 동시건강증진과 외화획득의 수단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부와 효도의 상징이자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전통문화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요컨대 오랫동안 한국인의 자긍심의 원천으로서 역할을 해 온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뜻밖에
미국캐나다 등이 국제인삼시장에 뛰어들어 지난 수 백 년 동안 고려인삼의 독무대와 같던 홍콩과 동남아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최근 들어선 중국이 아예 호시탐탐 국내시장을 넘보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삼수출액은 1980년의 67.5백만 달러, 1985년에는 73.0백만 달러로 늘어나 1990년에는 사상 최고인 164.7백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후 중국의 인삼생산 증가와 미국 및 캐나다의 공격적인 마케팅 등으로 인해 2002년에는 55백만 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에는 82.5백만 달러 수준으로 조금 회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확한 수치는 알기 어려우나 세계의 전체 인삼생산량은 건삼 기준으로 1978년 3140톤이었으나 1985년 5321톤, 1990년 8694톤으로 조금씩 증가해 1993년에는 1만1039톤까지 늘어났고 현재에도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별 생산량은 1978년의 경우 한국 73.2%(2300톤), 중국 19.1%(600톤), 미국 6.4%(200톤)로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뒤 1990년에는 한국이 52.8%(4590톤)을 차지하고 중국은 38.5%(3350톤), 미국과 캐나다가 각기 6.0% 및 2.7%를 차지해 우리나라의 시장 지배력은 다소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우위만은 분명히 유지했다.
  
  그러나 1993년 이후 상황이 달라진다. 중국과 캐나다의 약진으로 1997년에는 한국 30.2%(3065톤), 중국 47.5%(4880톤), 미국 15.1%(1532톤), 캐나다 7.3%(738톤)으로 이제까지 2000년 인삼의
역사에서 한국이 차지하던 우월적 지위는 일거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삼산업 종주국의 위상을 지키기는커녕 고려인삼의
명성을 유지하는 일 자체가 위태로워졌고, 나아가 언제 우리의 안방까지 미국, 캐나다 또는 중국의 인삼에 내줄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홍콩시장의 1/10~1/50만이 고려인삼의 몫
  
  국제 인삼거래의 중심지인 홍콩의 2004년도 나라별 인삼
수입 자료를 보면 '미국삼' 또는 '화기삼(花旗蔘)'이라고 부르는 캐나다와 미국으로부터 수입이 8868만3000달러 어치로 78.3%(물량기준 92.8%)를 차지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로부터 수입은 1180만9000달러로 10.4%(물량기준 2.2%)에 불과하다. 국제시장에 물량 기준으로는 50분의 1, 금액 기준으로는 10분의 1 정도만을 공급하는 마당에 '종주국'이라는 표현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위의 경우는 재배삼을 얘기하는 것이고, 야생삼 분야로 가면 형편은 더욱 '무인지경'이다. 우리는 공식통계에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전멸에 가깝기 때문이다. 같은 해 홍콩시장의 전체 수입량 가운데 99.9%인 2만7432kg이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이기 때문이다. 이를 액수로 보면 같은 해 미국이 홍콩에 수출한 재배삼 913만2000달러의 2배가 넘는 2120만4000달러나 된다.
  


  한 세대만에 미국과 캐나다의 독무대가 된 국제인삼시장
  
  사실 그동안 미국삼은 동양삼을 대체하기 위한 열등재로 인식되어 왔다. 예를 들어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이상 이전인 1971년의 홍콩시장 상황을 보자. 그 해 미국삼의 kg당 가격은 재배삼이 48.8달러, 야생삼이 178.1달러로 당시 우리나라 백삼가격 262달러 및 홍삼가격 288.7달러에 비하면 턱없이 싼 값이었다.
  
  하지만 2004년 홍콩시장에서 우리 홍삼은 147.6달러로 1971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백삼은 더 이상 찾아보기조차 어려워졌다. 같은 기간 미국 재배삼도 34.1달러로 30% 가량 하락했으나 장뇌삼(wild simulated ginseng)을 포함한 야생삼 값은 772.8달러로 무려 4.3배나 상승해 더 이상 열등재로 거래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콩시장에서의 변화상을 요약하면, 세계 인삼시장에서 그동안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던 고려인삼이 퇴조한 반면 미국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과 야생삼이 고급 품목의 하나로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대부분을 미국이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현상은 중국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금액기준 중국이 수입하는
뿌리삼의 90% 이상이 미국과 캐나다에서 생산되는 화기삼이다. 우리나라로부터의 수입은 1998년 3.2%를 기록한 이래 최근까지도 겨우 5% 내외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후발주자 미국삼은 도대체 무슨 노력을 했던 것일까
  
  그러면
문제는 우리나라의 인삼수출이 줄어들고, 그 결과로 국제시장에서 고려인삼이 위축된 이유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 중국과 같은 경쟁국들에 비해 세계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상품을 개발해 그것을 고급품으로 차별적으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거나 해외시장 개척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자. 미국삼이 발견된 것은 1716년이고, 그로부터 무려 한 세기 반이 지난 1886년 무렵에야 겨우 인공재배에
성공했고, 대량생산에 나선 것은 그로부터 다시 한 세기 가까이 지나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인삼무역이 재개된 1970년대 후반이다.
  
  이처럼 그 시작은 늦었으나 일단 발동이 걸리자 미국삼의 도약은 한 마디로 경이롭다고 할 정도다.
위생적인 대량 제조시설을 갖추고 음용이 편리한 다양한 인삼제품을 개발하는 가하면 "미국삼은 인체의 열을 내리기 때문에 동양삼과 달리 노인이나 여성, 어린이들이 먹어도 안전하다"고 소비자를 설득하는 논리까지 개발해 시장을 차별화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1975년에는 미국 야생삼을 <멸종위기동식물보호조약(CITES)>에 등록하고 수확과 유통 및 수출입을 철저히 관리하는 한편 야생삼과 비슷한 조건 속에서 생산되는 반야생삼(wild simulated ginseng)을 산업적으로 육성해 30∼40년의 짧은 기간에 동양삼의 아성을 거의 완벽하게 무너뜨리기에 이른 것이다.
  

▲ 미국과 캐나다의 화기삼 재배 및 수확 장면. 호당 경작면적이 각기 1ha와 11ha로 기계를 이용해 대규모 경작을 한다. 해가림시설 아래에서 트랙터가 인삼을 채굴하는 모습이 국내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장면이다. ⓒ프레시안


  새로운 제품개발과 제도정비로 추격에 나선 중국삼
  
  그렇다면 중국의
사정은 어떤가? 우리나라가 아직도 4∼6년근 인삼뿌리를 원료로 홍삼과 백삼, 태극삼을 주력제품으로 생산하는 데에 비해 중국에서는 3년차와 5년차에 이식해 8년차에 수확하는 '변조삼(邊條參)', 수출 목적으로 농약 잔류량을 낮춘 '저잔삼(低殘參)' 등의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했는가 하면, 1980년대에는 미국삼의 상업적 재배에도 성공했다. 70년대 중반 캐나다로부터 이른바 미국삼의 종자를 도입해 재배실험을 해 왔는데 최근 연간 650~800톤 정도를 생산해 중국 내 소비량의 약 20%를 자급하고 있다고 한다(원래 삼 또는 인삼은 한자로 '侵'과 '參', '蔘'을 같이 사용해 지금도 중국과 미국 등지에서는 그렇게 병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1911년 정부와 인삼계가 고려 이후 사용해 오던 '蔘'으로 통일해 '人蔘'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밖에도 저온
진공건조기에서 냉동 건조한 '활성삼(活性參)'과 수삼을 선도유지제로 처리한 후 비닐포장 한 '보선삼(保鮮參)' 등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상품들이다. 특히 야생삼과 같이 해발 700-800m의 산에다 묘삼을 심어 한두 번 이식한 후 12∼13년 만에 수확하는 '장뇌삼'은 웰빙과 건강기능성을 추구하는 시장에서 새로운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중국은 1995년부터 관련법규를 강화해 <인삼가공제품품질등급표준>을 마련하고 뿌리삼은 엄격한 의약품 통제로 수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1999년 5월부터 수입의약품관리기관을 위생부에서 국가약품감독관리국으로 이관하고 <수입약품관리방법>을 제정하여 모든 수입뿌리삼은 26종의
서류를 갖추어 수입의약품등록을 해야만 수입유통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이밖에도 1998년 12월 국가질량기술감독국에서 <서양삼 가공품에 대한 품질
규격>을 마련하고, 2002년 5월엔 길림 연길시에 국가인삼녹용제품품질감독검역센터( www.shenrong.org)를 설치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인삼산업 발전을 위한 품질관리와 함께 표준화와 규격화, 제품개발을 위한 기초연구를 왕성하게 수행하고 있다.
  
  한국, 독점은 풀렸지만…언제까지 '6년근 홍삼' 타령 하려나
  
  우리나라의 경우 인삼산업은 오랫동안 왕실 또는 정부의 독점이 유지돼 다양한 제품개발이나 시장개척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고려인종 3년(1124) 송나라의 서긍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등장하는 숙삼(熟蔘ㆍ오늘날의 홍삼)을 88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 인삼의 대표적인
얼굴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는 현실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바쁜 세상에 홍삼을 달여 먹을 수 있는 소비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 2005년 9월 현재 e-Bay를 통해 거래되는 세계의 주요 인삼차제품 종류와 가격수준. 미국삼을 원료로 한 차가 고려인삼차 보다 비싸게 거래되는데 기능성식품 등 고차가공으로 갈수록 이와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프레시안


  1996년 <홍삼전매법>이 폐지되긴 했다. 이로써 누구나 자유롭게 홍삼산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역시 영세
업체의 난립과 수출시장에서의 과당경쟁으로 어려움이 크다. 제도상의 관문은 트였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은 여전하거나 오히려 더 어려워진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동안 전매청을 중심으로
통합적으로 이뤄져 오던 인삼산업육성계획의 수립과 추진 및 관리, 연구개발 등의 인삼 관련 업무가 근래에는 원형(原形) 인삼과 제품, 그리고 장뇌삼 업무를 각각 농림부와 보건복지부, 산림청이 각기 다른 법적 근거를 가지고 제각기 추진하고 있다. '동북공정'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책임을 지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고사하고 산삼과 장뇌삼, 그리고 인삼제품을 포함한 인삼산업 전체의 실태 파악과 인삼 종주국으로서 위상정립을 위한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고려인삼의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세계시장에서 화기삼이 판을 치고,
유기농삼이나 장뇌삼은 물론 인삼을 원료로 한 고부가가치 기능성 식품과 의약품이 새로운 상품으로 거래되고 있는 게 오늘날 인삼시장의 현실이다. 전통적인 동양삼 시장인 홍콩이나 중국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시장의 흐름에 맞추어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더 이상 고려인삼의 자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삼의 종주국이라는 우리는 정작 이 부분에 대해 비전이나 책임 있는 정책대안을 전혀 마련하지 못한 채 오늘도 안방
TV 홈쇼핑채널은 '6년근 홍삼' 타령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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